길위의단상

오면 반갑고, 가면 더 반갑고

샌. 2012. 10. 21. 13:03

자식을 다 출가시키고 둘만 남은 지도 1년이 돼간다. 전보다 삶이 단출하게 변했다. 각자 가정을 꾸려서 제 몫을 하며 살아가니 자식에 대한 염려는 많이 줄어들었다. 집이 썰렁하게 느껴지던 단계도 지나고 이젠 둘만의 조용한 시간을 즐기며 산다. 두 노인만 있으니 어떤 날은 종일 절간에 있는 것 같다.

아이들은 주말에 가끔 찾아온다. 와서 자고 갈 때도 있다. 두 식구에서 네 식구로 불어나면 집안이 소란해진다. 처음에는 활기가 있고 좋지만, 나중에는 부산스러워서 피곤하다. 속마음으로는 인제 그만 돌아갔으면 싶어질 때도 있다. 그러나 가라고 할 수는 없다. 알아차릴 듯 말 듯하게 눈치만 줄 뿐이다.

자식을 대하는 부모의 태도에도 남녀의 차이가 큰 것 같다. 우리 부부의 경우를 보면 특히 그렇다. 아내는 오매불망 자식 생각만 머리에 들어 있다. 그저 하나라도 더 주지 못해서 안달이다. 결혼시켜 보냈으면 이젠 자기들 식대로 살도록 두면 될 텐데 여전히 품 안의 새끼 취급을 한다. 반대로 나는 냉정할 정도로 '너는 너, 나는 나' 주의다. 내 삶이 우선이지 자식으로 인해 방해받고 싶지 않다.

그런 관점의 차이 때문에 아내와 티격태격하기도 한다. 그러나 남녀의 본성이 쉽게 달라질 리 없다. 조물주가 그렇게 만들어놓은 걸 어떡하겠는가? 우리의 경우를 보면 둘을 섞어 놓으면 딱 알맞을 것 같다. 아내의 '불'과 내 '얼음'의 중간 지대는 없을까? 과잉보호와 방관의 접점을 찾는 것이 가정에서의 중용이 아닌가 싶다.

작고하신 장인어른은 우리가 찾아뵙고 떠날 때쯤 되면, 피곤하니 어서 가서 쉬어라, 라는 말을 자주 하셨다. 그 말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를 지금에야 이해하게 되었다. 나도 좀 쉬자, 라는 뜻이었던 것이다. 아무리 귀여운 손주라 하더라도 와서 난리를 치니 어찌 피곤하지 않았겠는가. 나는 장인어른보다 더 할 것 같아 미리부터 걱정이다.

우리 아이들은 이런 아빠의 마음을 아는지 자주 찾아오지는 않는다. 그런데 같은 배에서 나왔는데 첫째와 둘째는 성향이 아주 다르다. 둘째는 부모의 도움을 받으려 하지 않는다. 신경 쓸 일이 거의 없다. 반면에 첫째는 '노'라는 말을 모른다. 양가로부터 다다익선을 몸소 실천하고 있다.

부모와 자식 관계가 어떠해야 하는지는 서양의 경우를 배웠으면 좋겠다. 성인이 되면 독립시키는 게 원칙이다. 제일 중요한 게 경제적 독립이다. 한국의 부모는 자식이 제 몫을 해 나가도록 좀 더 냉정해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결혼시키랴, 집 장만해주랴, 반찬 해주랴, 손주 돌봐주랴, 한국의 부모는 죽을 때까지 자식이라는 올가미에서 풀려나지 못한다.

"자식이 찾아오면 반갑지만, 갈 때는 더 반갑다." 결혼을 한 대한민국의 자녀들, 늙으신 부모님 이젠 좀 편안하게 살게 해 드리자. 이젠 우리가 알아서 살 겁니다, 당당하게 선언하고 멋지게 살아가는 젊은이가 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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