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결혼하는 아들에게 주는 당부

샌. 2012. 10. 30. 10:35

근래에 가까운 지인 두 분의 아들 혼사가 있었다. 두 경우 모두 주례 없이 부모가 직접 아들 부부에게 주는 축하와 당부의 말로 대신했다. 형식적인 주례사보다는 훨씬 나았다. 정형화된 결혼식 문화가 탈피되는 것 같아 반갑기도 했다.

 

두 가정에서는 배울 바가 많다. 특히 부모와 자식 사이에 소통이 잘 되는 점이 그렇다. 지금도 마치 친구처럼 다정하다. 내 경우는 아이들이 사춘기를 지나면서부터는 거의 진지한 대화를 해 보지 못했다. 그때는 아이들을 탓했지만 지금 돌아보니 내 탓이 더 컸다. 가장 후회되는 부분이다. 지금도 아이들은 나를 무척 어려워한다.

 

문제 학생 뒤에 문제 가정이 있다고 한다. 반대로 바른 젊은이 뒤에는 건강한 가정이 있다. 그 사례를 이 두 집에서 본다. 특히 한 분은 남편을 일찍 여의고도 홀로 자식을 번듯하게 키웠다. 남편이 남긴 글을 모아 책을 만들어서 결혼하는 아들에게 선물로 주었다. 아들을 독립시키며 감회가 더욱 남달랐을 것이다.

 

결혼식장에서 아들에게 준 당부를 마침 두 분이 블로그와 카페에 올렸다. 가정사지만 이미 공개된 것이니 부러운 마음으로 여기에 다시 옮긴다. 양해해 주시리라 믿는다. 묘하게도 두 집 모두 새로 들어온 며느리 이름이 지영이다.

 

 

아빠가 아들에게

 

호연아! 지영아!
모든 사람이 시인이 된다는 9월이다.


생명의 움을 틔웠던 계절이 지나고
뜨거운 햇살과 모진 비바람을 겪었던 계절도 지났구나.
그리고 돌아온 계절에 호연이와 지영이의 사랑이 결실을 맺는구나!


잊지 못할 9월이겠지?
9월에 프로포즈를 하고 두 해가 지난 9월에 결혼하는 호연이와 지영에게는!


오늘 호연이와 지영이의 결혼식,
아빠, 엄마도 여기 모인 모든 하객과 더불어 축하한다.
지영이가 내게 재밌는 편지를 부탁했지만 잘 안되더구나.
그래서 재밌는 편지보다 의미 있는 편지를 쓴다.


남편이 되고 아내가 되는 호연아, 지영아.


삶을 즐겨라.
허상을 잡으려 인생을 허비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기대보다 얻는 것이 적어도 감사하며 살았으면 좋겠다.


우리....
일 년에 몇 차례는 가족여행을 하자.
일상에서 벗어나 삶을 이야기하자.
다른 계절, 다른 장소, 다른 대화.....
지영이도 몇 차례 함께 한 여행이 참 좋다고 했지?
우리의 삶이 더 여유로워지고 더 성숙할 거다.
우리 앞으로 잘 놀고 맛있는 것 자주 먹자.


인생....
호연이 이름처럼 호연지기(浩然之氣)로 살거라.
조금은 손해 보고 살거라.
작은 것에도 감사하고 행복해 하며 살거라.
아픔은 나누고 부족함은 보듬어주며 살거라.
나도 잘 하지 못하는 것을 말로 한단다.


호연이와 지영이 인생 최고의 날!
여기 모인 사람들과 한 바탕 잔치를 즐기자.
두 번 다시 없을 오늘!
행복하고 기쁜 모습을 네 맘껏 보여다오.


오스트레일리아로 신혼여행 잘 다녀와라.


2012. 9. 22.


평생 동무하자고 약속했던 호연이가 새 동무 지영이와 결혼하는 날에, 아빠가.

 

 

 

엄마가 아들에게

 

먼저 바쁘신 중에도 이렇게 멀리까지 자리를 함께 해 주신 하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립니다.
여러 하객분들 모시고 아이들에게 무언가 덕담을 하려니 쑥스럽기 그지 없습니다만 이 기쁜 날 부모로서 축하 한마디는 해달라니 해야겠지요.
 

상석이가 어느 날 엄마는 복도 많네요. 어디서 이렇게 이쁜 며느리를 얻었을까 하더군요.
제가 봐도 그런 것 같네요. 어떠신지요? 여러분 보시기에도 그렇지 않은 가요? 맞다고 생각이 드시면 박수 한번 크게 쳐 주실래요?
 

그럼 아이들에게 한마디 하도록 할께요.
 

상석아!
네가 이렇게 잘 커줘서 그리고 네 말대로 어디서 이렇게 이쁜 지영이를 데리고 왔는지 정말 생각만 해도 행복하다.
엄마가 아빠 갑자기 떠나고 정신없어서 너에게 신경도 잘 못 쓰고 오히려 네가 엄마 외로울까봐 이것 저것 신경 많이 써 준 것 이제서야 고맙다는 말을 하게 되네.
그런데 엄마가 보기엔 네가 복이 많은 것 같다. 콩깍지가 씌웠는지 지영이가 네 단점조차도 장점으로 보고 감싸주려고 하니 말이다. 뭐가 좋으냐 물으니 잘 생겨서 좋다고.... 늙으면 똑 같다 하니 늙어도 멋지게 늙을 거라나? 아무리 엄마가 이런저런 단점을 이야기 해줘도 다 좋다고 말하는 지영이를 만난 것은 행운이다. 그 마음으로 둘 다 오래 오래 함께 살아라.
 

상석아! 지영아! 같이 들으렴.
할아버지께서 엄마, 아빠에게 결혼 초 들려준 말 두가지와 엄마의 한마디로 덕담을 대신할께.
 

첫째는 부부유별. 너무 가까우면 깨지니 적당히 거리를 유지하라는 뜻이다.
너희들이 존댓말을 쓰기로 했다는 것을 듣고 놀라웠다. 요즘 말들을 너무 함부로 해서 문제가 많이 생긴다고 알고 있었으니까. 할아버지의 말씀은 가까울수록 함부로 말하지 말라는 것이다. 가장 가까운 부인과 남편에게 다정한 말로, 듣기 좋은 말로 하도록 노력해라.
 

둘째는 서로 집에서 대접해 줘라.
그래야 밖에서 자신감이 생긴다. 집에서 무시당하면 밖에서 절대로 자신감을 가질 수 없다. 밖에서 돈도 잘 벌고 활동도 잘 하려면 자신감을 잃지 않도록 항상 서로를 북돋워 주었으면 한다.
 

셋째 서로 감동을 주어라.
아빠와 살면서, 또 할아버지와의 만남에서 엄마는 순간순간 많은 감동을 받아서 지금까지도 생각이 나면 마음이 따뜻하고 행복해질 때가 많다. 받으려고 하기 보다 상대가 지금 어떤 기분인지 내가 어떻게 해주면 기분 좋을지 순간순간 연구하고 노력하며 살기 바란다.
 

할아버지께서는 상석이 같은 아이 하나면 더 낳아달라고 엄마에게 간절히 편지도 써 보내시고, 약도 많이 지어 주셨단다. 엄마가 바쁘다는 핑계로 그 소원 못 들어 드려 항상 마음이 불편했단다. 상석이 뭐가 그리도 이뻤을까 궁금한데 여쭤 볼 수도 없네.
너희 결혼을 할아버지, 아빠가 정말 기뻐 하실 거다. 엄마가 더 낳지 못한 아이들 너희들이 낳아 너희들처럼 잘 자라 또 이렇게 이쁜 모습으로 결혼을 시킬 수 있도록 노력하렴.
 

오늘 너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하기 위해 책 한 권을 만들었다.
그 책에는 아빠가 너무 살기 바빠 공항에서 호텔에서 써 보낸 너에 대한 그득한 사랑과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적은 편지와 마지막 가던 해 적어 놓은 짧막한 글들이다.
아마도 아빠가 손자들을 키우며 들려주고 싶었던 것들로 할아버지한테 들으며 컸던 이야기들인 것 같다. 아빠와 할아버지께서는 나의 편함보다, 나의 부함보다, 나의 사치보다는 이웃, 사회를 먼저 생각하며 사신 분들이다.
 

그 책에 너를 아끼고 아빠를 사랑했던 아빠 친구, 고모, 이모, 외삼촌의 글도 함께 있다.
그리고 이 책에 글로서 써주지는 못했고, 비록 이 자리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아빠를 좋아하는 많은 분들이 너의 삶을 격려하고 있음을 기억하고 힘들 때도 잘 이겨내고 좋은 모습으로 잘 살아라.
이 책은 엄마가 미루다 미루다 못하고 있는 것을 외삼촌이 무척 많은 시간을 투자해 나온 것이다. 아빠가 아픈 것을 참으며 너에게 들려준 사랑이 가득한 이야기들이 너희들의 삶에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
 

이번 혼사를 추진하면서 아빠가 없는 것이 무척 안타깝고 힘들었는데 놀랍게도 아빠 친구들이 근 20년 지난 지금에도 어디선가 소식을 들으시고 그렇게 많은 격려 전화와 과분한 축하를 해서 너무 감사했단다. 비록 멀어서 함께 많은 분이 하지 못해 아쉬워하셨지만... 아빠가 옆에 있어 나에게 힘을 실어주는 기분이었단다. 정말 아빠는 짧지만 잘 살았던 분인 것 같다. 이렇게 힘을 실어준 주위 분들에게 보답을 하는 길은 네가 정말 잘 살아가는 것이다.
 

정말 잘 살아라. 재미있게. 주변사람들이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 좋아 질 만큼만....
그리고 주변 사람들도 재미있고 기분 좋게 살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영향을 주면서 살아내리라 믿는다.


2012. 10. 20.

 

상석이를 낳아 기른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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