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경쟁에서 벗어나기

샌. 2013. 2. 6. 11:04

이 세상을 '싸움터'가 아니라 '놀이터'로 볼 수는 없을까? 우리가 경쟁이라는 늪으로부터 한 발을 뺀다면 탐욕으로 작동되는 이 세상의 시스템은 저절로 무너지지 않을까?

 

경쟁에 관한 강수돌 님의 글을 요약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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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은 필요하다고 대부분의 사람이 믿고 있다. 여러가지 폐해가 있지만 발전을 위해 경쟁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이 경쟁 상황에 빠지면 결코 행복하게 느끼지 못한다. 인간관계를 파괴하고 스트레스를 높이기 때문이다. 진실을 말하면, 경쟁의 필연성은 우리가 선택한 게 아니라 오랜 세월 동안 체계적으로 교육되고 만들어진 결과다. 경쟁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도록 만들면 이득을 얻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바로 권력자의 통제와 지배의 도구로 경쟁이 사용된다. 경영자와 자본가는 노동자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적으로 일하게 만든다. 관리자들이 굳이 감시하거나 채찍을 들지 않아도 사람들은 알아서 자신을 경쟁적으로 짜내게 되기 때문이다.


세계 차원의 경쟁도 마찬가지다. IMF나 세계은행, WTO 같은 조직이 세계적 차원의 경쟁을 적절히 관리한다. 이들은 미국과 같은 강대국들과는 적절한 공조를 취한다. 세계적 강자인 자기들끼리는 적절히 협력하면서 각 나라에 가서는 민중을 상대로 '무한경쟁' 시대라며 보이지 않는 채찍질을 해댄다. 이렇게 일국 차원에선 대통령이나 입법, 사법, 행정, 군대, 경찰, 학교 등이 경쟁체제를 관리한다.


그간 우리가 무의식적으로나 의식적으로 수용해온 경쟁이란 것은 이런 총체적 구조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도 모르고 학교건 일터건 무조건 1등 해야 성공한다며 밤낮으로 피, 땀, 눈물을 흘린다. 한마디로 우리는 속고 살았다. 선거철마다 등장하는 네거티브 선전의 대명사 '빨갱이' 낙인 역시 이 경쟁논리를 부추기는 자들이 그에 반대하는 민초들과 그 철학이 두려워 자기방어를 하는 논리에 불과하다.


오늘날의 경쟁은 '너 죽고 나 살자' 식의 적대적 생존경쟁으로 변질되었다. 근본적으로는 경쟁을 통해 사람과 자연을 효과적으로 지배하고, 그를 통해 이윤을 지속 추구하는 자본의 논리가 그렇게 만들었다. 그리고 이를 받아들인 학자들과 언론이 경쟁 이데올로기를 전 사회로 확산한 결과다. 실제로 경쟁은 사회경제적 불평등이나 빈곤을 부르고, 자원고갈이나 생태파괴 등 경제의 토대 자체를 허물어뜨린다. 나아가 경쟁은 필연적으로 독과점으로 귀결된다. 경쟁 위주의 구조조정은 결국 다국적기업이나 세계금융자본에게 권력을 몰아준다. 마침내 이들이 기존의 국가 주권도 허물고 국민들로부터 민주적으로 탄생한 권력도 하나씩 찬탈한다.


도대체 우리는 무엇을 위해 맹목적으로 달려가는가? "이제 그만!"을 외쳐야 한다. 경쟁을 위해, 성장을 위해 앞만 보고 가던 길을 멈춰, 우리 자신의 모습을 성찰해야 한다. 사람의 논리도, 생명의 논리도 아닌 자본의 논리, 지배의 논리를 마치 우리자신의 논리인 것처럼 내면화하고 숭배하는 우리는 도대체 어떤 존재인가?


경쟁을 옹호하는 네 가지 입장에 대해 이렇게 반박한다.


첫째, 경쟁은 불가피하며 인간 본성의 일부라는 주장에 대해....


- 이는 현실을 유지하려는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믿음에 불과하다. 오히려 경쟁은 우리의 본성 때문이 아니라 경제적 혹은 심리적 결핍 때문에 나오는 것이며, 경험적으로 학습되는 것이다. 굳이 따지자면 협력이 우리의 본성에 더 가깝다. 다윈의 자연선택론을 변용한 스펜서의 '적자생존' 개념은 경쟁에서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것이라는 정글의 법칙을 정당화한다. 그러나 많은 학자들은 자연계에서 경쟁은 예외적 또는 한정적으로만 이뤄질 뿐, 대부분은 협력을 통해 지속적 생존을 추구해왔음을 증명한다. 인간사회 역시 마찬가지다. 우리는 대형 사고나 화재 등과 같은 큰 재난시 자기만 살려고 비상구를 독차지하는 것보다 차분히 순서를 지키며 서로 돕는 것이 더 나음을 잘 안다. 즉 경쟁보다 협력이 인간의 생존율을 높인다. 실제로 오늘날과 같은 범지구적 경쟁의 시대에는 패자는 좌절감과 상실감에 자살하거나 우울증에 걸리기 쉽고, 승자는 자신의 경쟁력이 상실될까 봐 불안에 떨면서 자신을 가혹하게 채찍질하다가 과로로 쓰러지기도 한다. 패자는 물론 승자조차 경쟁은 두렵다. 가만히 느껴보라. 우리 마음이 무엇이라 하는가? 경쟁을 할 때 마음이 평온한가, 아니면 협력을 할 때 마음이 편한가?


둘째, 경쟁이 없는 삶은 정체되며 퇴보한다는 주장에 대해....


- 경쟁이 없다면 아무도 최선을 다하지 않을 것이며 아무런 발전이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생각해보라. 부추겨진 경쟁이 없더라도 어떤 일에 내가 재미나 의미를 느낀다면 누가 말린다 해도 기어코 하려 하지 않던가? 그것도 최선을 다해 말이다. 진정으로 창의적인 예술작품은 경쟁적인 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만들어진 경우보다, 피카소의 경우처럼 작가가 그 창작 과정에 절대적으로 몰입할 때 탄생하지 않던가? 월등한 성과를 내기 위해선 경쟁이 필요없을 뿐만 아니라, 대체로 경쟁이 존재하지 않는 편이 더 낫다. 미국 백인 학교에 북미 원주민 아이들 몇 명이 전학을 왔다. 몇달 공부한 뒤에 선생님이 시험을 치고자 하니 준비하라고 했다. 백인 아이들은 책가방을 책상 가운데에 놓았다. 서로 보여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원주민 아이들은 가방을 올리기는 커녕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선생님이 "왜 그러고들 있느냐?"며 화를 내니, 아이들은 "선생님, 저희들은 어렸을 때부터 어려운 문제가 있을 때는 서로 협동해서 풀라고 배웠는데요."라고 했다. 암기력 테스트에 쏟아붇는 돈과 시간, 열정을 생각하면, 대부분의 경쟁 교육이나 시험은 한마디로 고비용 저효율, 즉 '값비싼 코미디'에 불과하다.


셋째, 경쟁을 하면 더 재미있다는 주장에 대해....


- 같은 스포츠라도 놀이로 하면 더 재미가 있다. 하지만 경쟁적인 스포츠는 스트레스를 증가시키며 승패 결과에 따라 희비가 엇갈린다. 내 경험도 마찬가지다. 나는 탁구를 칠 때, 점수를 매겨서 승패를 가르는 게임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마음을 합쳐 주고받는 랠리를 더 좋아한다. 경쟁 게임을 하면 나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된다. 평온하던 내 마음이 마치 자동차를 몰고 복잡한 도로를 달릴 때처럼 변한다. 그런 도로 위에서는 내가 아닌 다른 모든 운전자들이 경쟁자나 적대자가 된다. 그러나 공을 잘 주고받는 것에 초점을 두고 서로 죽지 않고 오래 치려고 마음먹으면 탁구가 훨씬 재미있다. 공동의 목표를 두고 협력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놀이가 경쟁보다 더 재미있다. 오늘날은 거의 모든 놀이가 경쟁적인 스포츠로 변해 거액의 상금과 연결되거나 엄청난 비지니스로 변질되었다. 국제 스포츠의 경우엔 국가주의나 민족주의와 결합해 대리전쟁의 수단이 된다. 스포츠 민족주의가 강해질수록 사람들은 자신을 조국이나 민족과 더욱 동일시하게 되어, 결국 세계시장을 둘러싼 개별 자본 간 경쟁에서 "우리 제품이 1등을 해야 한다"며 각 노동자들이 자국 자본에 더 협조적으로 변한다. 이런 식으로 경쟁에 은근슬쩍 재미를 붙이는 논리는 나를 파괴의 구렁텅이로 내모는 자본에 나도 모르게 협력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넷째, 경쟁은 인격을 키우고 인간성을 증진한다는 주장에 대해....


- 경쟁이 자본을 위한 생산성을 올리는 데는 좋은 수단이 되지만, 경쟁하는 사람들은 과연 인간적으로 만족스럽고 평화로울까? 만약 누군가가 경쟁적인 성향을 드러내면 아마도 주변 사람들은 피할 것이다. 편안하고 친밀한 인간관계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치열하고 무의미한 경쟁은 인간관계는 물론 인격 형성에도 치명타를 남긴다. 경쟁적인 사람은 자기 외의 모든 타자를 경쟁자로 본다. 타자가 자기보다 뛰어나다 싶으면 본능적으로 질투하거나 시기한다. 자칫 공격적으로 되기 쉽다. 그리고 경쟁은 사람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한다. 패배의 두려움은 물론 승리의 두려움 - 내가 승리하면 타인들이 시기하고 질투할까 봐 걱정함 - 도 그 원인이다.게다가 고립된 관계, 유대감의 상실도 불안을 조장한다. 경쟁과 인격 간의 관계에 대해 알피 콘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자신의 능력을 근본적으로 의심하기 때문에 경쟁을 하며, 결국 낮은 자존감에 대한 보상을 위해 경쟁하는 것이다." 그렇다. 자아존중감이 낮을 때 우리는 내면이 불안하다. 그것을 메우기 위해 우리는 경쟁적으로 된다.


낮은 자존감은 왜 생길까? 아이의 자존감 형성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이는 부모, 그중에서도 엄마다. 만 3세 무렵까지가 결정적이다. 이 시기는 어른과의 친밀한 관계 속에서 아이의 기본 신뢰감이나 자율성이 성장한다. 생각해보면 어린시절이나 어른이 되어서도 주위로부터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하면 내면의 공허함이 너무나 커서 '인정(recognition) 투쟁'에 휩싸인다. 조건 없는 사랑이 결핍된 사람들 또는 버림받은 느낌이나 열등감이라는 상처로 고통당하는 사람들은, 경쟁을 통해 자신을 인정받으려 한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막연한 느낌 때문에 남보다 더 눈에 띄려고 하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이러한 측면은 곧 '강자 동일시' 심리와 맞닿는다. 즉 주어진 체제나 구조 안에서 최강자가 됨으로써 존재를 인정받거나, 아니면 최강자의 아래로 들어감으로써 마치 스스로 최강자가 된 듯 행세하면서 생존을 도모하는 것이다. 결국 이 모든 사실은 경쟁이 인간성에 해악을 끼친다는 것, 그리고 인간성이 온전히 발달하지 못할수록 경쟁 강박에 시달린다는 점을 확인해준다.


이 부조리한 현실을 극복하자면 먼저 우리 의식이 깨어나 이 '경쟁의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이런 식으로 모두가 모래알처럼 흩어져 서로를 경쟁자로 여기고 살면 아무런 미래나 희망이 없음을 직시하는 게 출발의 첫걸음이다. 이것이 우리가 굳게 내면화하고 있는 경쟁으로부터 해방되는 실마리다. 이러한 깨인 개인들이 모여 경쟁과 분열이 아닌 연대와 협력의 방식으로 살아가는 공동체가 생긴다면 변화가 시작되는 것이다. 지배와 이윤을 추구하는 자본이 사회경제 시스템을 장악하고 있는 현실에서는 어려운 일로 보인다. 그러나 불가능하지는 않다. 아름다운 공동체 경제가 꽃을 피우면 우리는 마침내 자본과 그 대리인들에게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경쟁과 분열이여, 이제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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