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수종사에서

샌. 2014. 2. 17. 17:00

 

감기 미열이 남아있지만 가까운 수종사(水鐘寺)로 바람을 쐬러 나갔다. 일주문 바로 앞에까지 차를 갖다 대고 걸음은 최대한 아꼈다. 오늘 한낮은 봄기운마저 느껴질 정도여서 몸도 덩달아 나근나근해졌다. 산기슭 어딘가에 복수초라도 피어있을 것만 같았다.

 

어슬렁거리며 절의 이곳저곳을 둘러보았다. 법당에서는 누구의 삼우제를 지내는지 스님의 염불 소리가 계속 들렸다. 외래 방문객들이 몇몇 눈에 띄었을 뿐 평일의 절은 고즈넉했다. 다실인 삼정헌(三鼎軒) 앞 댓돌에는 등산화 몇 켤레가 놓여 있었다. 열린 문틈으로 보이는 실내 풍경이 너무 고와서 들어가기가 주저되었다.

 

수종사와 한음 이덕형 선생과의 인연에 대한 안내문이 새로 만들어져 있었다. 바쁜 중앙정치의 와중에도 한음은 절 아래 사제촌에 머물 때 자주 수종사를 왕래했다고 한다. 어느 날 집으로 찾아온 수종사 주지였던 덕인 스님에게 써준 시 한 편이 이렇게 소개되어 있다. 아마 지금과 같은 겨울철 어느 때였던가 보다.

 

僧從西庵拍柴關

凍合前溪雪滿山

萬疊靑螺雙練帶

不妨分占暮年閑

 

운길산 스님이 사립문을 두드리네

앞 개울 얼어 붙고 온 산은 백설인데

만첩청산에 쌍련대 매었네

늘그막의 한가로움 누려봄 즉 하련만

 

임진왜란 후의 정쟁과 국정의 혼미에 한음은 무척 상심했던 것 같다. 결국은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이곳으로 내려왔지만 늘그막의 한가로움을 오래 누리지는 못했다.

 

수종사는 두물머리를 내려다보는 경치가 좋다고 하여 고래로 많은 사람들이 들렀다. 그러나 오늘은 탁 트인 조망 대신 뿌연 안개가 시야를 가렸다. 하나 이런들 어떠며 저런들 어떻겠는가. 조망이 시원찮다고 투덜댄들 달라지는 것은 없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게 우리네 인생살이가 아니던가. 신불(神佛)을 찾아 간구하고 위로받고, 넘어지고 일어나고 하다 보면 결국 넘어지는 게 일어나는 것임을 깨닫게 될지도 모른다. 분별심에서 인간의 미망이 생기는 것임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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