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불국사와 감은사지

샌. 2014. 5. 17. 10:35

 

대구에 간 길에 잠시 경주에 들렀다. 굳이 불국사에 찾아간 것은 조용한 불국사를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서너 차례 불국사에 갔지만 수학여행 온 학생들로 늘 시장통만큼 복잡했다. 잠시 수학여행이 금지된 틈을 이용해서 불국사의 다른 맛을 느끼고 싶었다.

 

그래도 관람객이 많았지만 전과 같은 방해를 받지는 않았다. 법당의 스님 독경 소리에서는 고요한 산사 분위기가 났다. 다만 너무 다듬어진 절이어서 성형 미인을 보는 것 같이 자연스러움이 부족했다.

 

 

 

이런 불국사의 분위기를 대표하는 게 다보탑일 것이다. 언제 보아도 다보탑의 조형미는 빼어나다. 시대의 정형을 뛰어넘은 독창성에 감탄한다. 옆에 있는 석가탑은 현재 수리중이다. 석재는 완전히 해체되어 밑바닥이 드러나 있다.

 

중학생일 때 수학여행으로 불국사에 처음 왔다. 경주, 부산, 진해를 도는 여행이었다. 불국사의 첫 기억은 남아 있지 않다. 지금은 출입 통제된 백운교 돌계단에 앉아 단체로 사진을 찍었을 것이다. 중학생의 눈에 불국사의 아름다움이 들어오기는 어려웠으리라. 진해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의 절도 있는 모습만이 선명하게 남아 있으니 말이다.

 

 

 

처음으로 불국사의 고즈넉한 분위기를 즐겼다. 절집의 아웃사이드에도 나름의 아름다움이 있다. 나이가 들수록 중심부보다는 외곽에 더 눈길이 간다.

 

저녁 무렵에 감은사지(感恩寺址)에 갔다. 석탑을 보기 위해서였다.

 

 

 

 

신라를 통일한 문무왕은 부처님의 법력으로 왜를 물리치기 위해 절을 세우기 시작했다. 그러나 문무왕은 절의 완성을 보지 못하고 죽었고, 용왕이 되어 나라를 지키겠다며 수중릉에 묻혔다. 아들인 신문왕이 절을 마무리하고 아버지의 은혜에 감사한다는 뜻으로 감은사(感恩寺)로 이름 지었다. 만약 문무왕 당대에 절이 완공되었다면 안국사(安國寺)로 이름 짓지 않았을까, 실없는 상상도 해 보았다.

 

감은사의 금당(金堂)은 문무왕의 화신인 해룡이 출입할 수 있도록 바다와 연결되어 있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감은사지 앞 들판이 당시에는 바다였다는 얘기다. 지금은 해안선이 2km 정도 물러나 있다. 석탑 앞에 앉아 그때의 풍경을 상상해 본다. 탑돌이를 하며 두 손을 모으고 있는 신라인들이 내 옆에 있는 것 같다.

 

상전벽해가 되듯 지형은 변했고 절도 무너졌지만 석탑만은 크게 훼손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천 년이 넘는 긴 세월을 견뎌냈다는 게 신기할 정도다. 다른 폐사지에도 석탑이 남아 있는 걸 보면 석탑에는 손을 대면 안 된다는 불문율이라도 있었지 않았나 싶다. 고목을 건드리면 해코지를 당한다는 미신처럼 말이다.

 

창건된 연대로는 감은사가 불국사의 형님뻘 된다. 불국사는 복원되어 한국을 대표하는 사찰이 되었지만, 감은사는 두 석탑만 남긴 채 빈터만 남았다. 폐사지에 서면 모든 것을 비워버린 자의 여유와 평화가 느껴진다. 채웠다가 비워내는 과정을 겪어야 하는 건 인생이나 자연의 존재나 마찬가지다. 폐사지는 우리가 닮아가야 할 마음의 풍경이 아닐까. 그 쓸쓸한 풍경에 고색창연한 석탑 하나쯤 남겨두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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