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연장통 / 마경덕

샌. 2014. 8. 8. 09:57

장례를 치르고 둘러앉았다. 아버지의 유품을 앞에 놓고 하품을 했다. 사나흘 뜬눈으로 보낸 독한 슬픔도 졸음을 이기진 못했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나무상자는 관처럼 무거웠다. 어서 짐을 챙겨 떠나고 싶었다. 차표를 끊어둔 막내는 자꾸 시계를 들여다봤다. 이걸 어쩐당가, 마누라는 빌려줘도 연장은 안 빌려 준다고 해쌓더니.... 엄니는 낡은 상자를 연신 쓰다듬었다.

 

관 뚜껑이 열리듯 연장통이 열리고 톱밥냄새가 코를 찔렀다. 술과 땀에 절은 아버지, 먹통, 끌, 대패, 망치를 둘러매고 늙은 사내가 비칠비칠 걸어나왔다. 몽당연필을 귀에 꽂은 아버지, 대팻밥이 든 고무신에서 고린내가 풍겼다.

 

자식 농사만은 대풍을 거두셨다. 망치는 부산으로, 톱은 서울로, 줄자는 울산, 말라붙은 먹통은 분당으로, 아버지는 그렇게 아홉 번 찢어지셨다. 가방을 뚫고 나온 이 빠진 톱날이 악어처럼 사나웠다.

 

- 연장통 / 마경덕

 

 

홉 자식을 키우느라 아버지의 노고가 오죽했으랴. 그러나 아버지는 고단한 속내를 드러내지 않았을 것이다. 자식들에게 남은 아버지의 기억은 초라하고 보잘것없는 것이었는지 모른다. 장례식을 치르고 자식들은 유품으로 연장 하나씩을 챙겨 집으로 돌아간다. 아버지를 떠나보낸 슬픔이 구체적으로 드러나진 않지만 그래서 더 안타까움을 더한다. 시인은 반어법으로 그 아픔을 보여준다. 짐짓 아닌 체하는 데 시의 묘미가 있다.

 

누군가 그랬다.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 돈을 벌고, 자식들 잘 키우려고 애를 쓰다가 늙어서 버려지는 결핍과 실패의 산물이라고. 아버지는 떠나고 없고, 남은 연장통이 너무 쓸쓸하다. 연장통은 아버지의 죽음과 함께 해체되었다. 죽음이란 그런 것이다. 망자는 잊혀지고 물건도 그 의미를 잃는다. 독한 슬픔도 잠깐이다. 산다는 것도 먹먹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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