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퉁 / 송수권

샌. 2014. 8. 13. 07:29

벌교 참꼬막 집에 갔어요.

꼬막 정식을 시켰지요.

꼬막회, 꼬막탕, 꼬막구이, 꼬막전

그리고 삶은 꼬막 한 접시가 올라왔어요.

남도 시인, 손톱으로 잘도 까먹는데

저는 젓가락으로 공깃돌 놀이하듯 굴리고만 있었지요.

제삿날 밤 괴 꼬막 보듯 하는군! 퉁을 맞았지요.

손톱이 없으면 밥 퍼먹는 숟가락 몽댕이를

참고막 똥구멍으로 밀어 넣어 확 비틀래요

그래서 저도 - 확, 비틀었지요.

온 얼굴이 뻘물이 튀더라고요.

그쪽 말로 그 맛 한 번 숭악하더라고요.

비열한 생각까지 들었어요.

그런데도 남도 시인 - 이 맛을 두고 그늘이

있다나 어쩐다나,

그래서 그늘 있는 맛,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삶, 그늘 있는 사랑.

그게 진짜 곰삭은 삶이래요.

현대시란 책상물림으로 퍼즐게임 하는 거 아니래요.

그건 고양이가 제삿날 밤 참꼬막을 깔 줄 모르니

앞발로 어르며 공깃돌놀이 하는 거래요.

詩도 그늘 있는 詩를 쓰라고 또 퉁을 맞았지요.

 

- 퉁 / 송수권

 

 

음식 맛을 다양하게 표현하는데 '그늘 있는 맛'은 처음 들어본다. 나도 벌교에 가서 꼬막 정식을 먹었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맛이다. 그러나 바다 어두컴컴한 뻘 속에서 자라는 꼬막의 그늘을 시인은 알아챈다. 뻘에서 사는 할머니의 고된 삶도 그 속에는 들어 있을 것이다. 맛만 아니다. 그늘 있는 소리, 그늘 있는 웃음, 그늘 있는 삶, 그늘 있는 사랑, 사람살이에는 늘 그늘이 따라 붙는다. 만약 그늘이 없는 인생이 있다면 인생의 진미는 모른 채 껍데기만 산 것이리라.

 

꼬막을 먹다가 시론으로까지 연결되었다. 그늘 있는 시를 쓰라는 건 인생 제대로 살라는 퉁이라고 본다. 그늘이 없다면 그늘 있는 시가 나올 수 없기 때문이다. 사물의 이면, 그늘을 읽어내는 능력은 시인의 필수 조건이 아닌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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