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 장의 사진(20)

샌. 2015. 2. 4. 08:07

 

뇌리에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잊히지 않는 사진 한 장이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 탐사에 나섰던 1970년대에 찍은 사진으로 알고 있다. 그렇다면 40여 년쯤 전일 것이다. 위치로 볼 때 달 궤도를 도는 우주선에서 찍은 것 같다.

 

사진의 구도는 단순하다. 달 지평선이 화면을 1/2로 가르고 그 위에 지구가 떠 있다. 달은 회색이고 하늘은 새까만데 지구는 푸른색으로 반짝인다. 흰 구름이 있고, 대륙 모양도 보인다. 태양은 머리 위에서 약간 뒤쪽에 떠 있다.

 

이 한 장의 사진이 준 충격이 대단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당시는 외계로 나가 지구를 본 것이 처음이었다. 물론 지구가 어떻게 보일지는 예상하고 있었지만 실제 사진을 통해 본 지구는 너무나 아름다웠다. 우주의 보석과 같았다.

 

우리가 아는 한 이 넓은 우주에서 생명을 품은 행성은 지구밖에 없다. 우리 눈이 미치지 못해서 그렇지 지적 생명체를 기른 행성이 있을 가능성은 충분하다. 1억 개의 행성 중에 지구를 닮은 행성이 하나의 비율로 있다 해도 우리 은하계에서만 그 숫자는 수만 개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극단적으로 우리가 유일할 수도 있다. 현재는 아는 게 별로 없다. 어느 경우든 지구 같은 환경이 귀하다는 건 분명하다.

 

사람들은 사진 속 지구를 보면 생각했을 것이다. 우리가 특별하고 아름다운 곳에 살고 있구나, 그러나 또 그만큼 불안해 보이기도 했다. 당시는 미국과 소련의 군사력 경쟁이 치열하던 때라 핵전쟁이라도 일어나면 한순간에 파멸을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탐욕을 줄이고 지구를 지키자는 의식이 커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지금까지 달라진 건 별로 없다. 얼마 전 발표된 지구 종말 시계는 종말 3분 전으로 수정되었다. 전까지는 종말 5분 전이었다. 지구 환경 위기와 핵전쟁 위험성이 증가한 것이 이유였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는 분쟁과 살상이 끊이지 않고 있다. 똑똑한 호모 사피엔스가 자멸의 길로 가는 것도 의식하지 못하고 있다.

 

종말은 단순한 문명의 멸망이 아니라 지구 생태계의 철저한 파괴로 나타날 것이라는 게 두렵다. 그렇게 되면 저 아름다운 지구는 달 표면의 색깔처럼 회색의 짙은 구름으로 덮일 것이다. 만약 핵전쟁이 일어난다면 박테리아 종류 외에는 모든 생물이 멸종할 것이다. 자신이 키워낸 생명체에 의해 지구가 파괴된다는 건 아이러니다. 그것은 어설픈 두뇌를 가진 종족의 문명이 가야 할 필연적 귀결인지도 모른다.

 

왜 우리는 서로 잡아먹지 못해서 안달일까? 자연은 왜 이렇게 폭력적인 성향을 인간 유전자에 내장시켰을까? 수 천 년 뒤에도 과연 지구는 저토록 예쁘고 아름답게 반짝일 수 있을까? 모 행성에 몹쓸 짓을 해놓고 인류는 어디로 갈 수 있을까? 지구에서 인간이 저지르는 행태를 보면 막무가내의 불량소년을 보는 듯 착잡해진다.

 

아무 기교가 없는 이 사진은 첫 번째 각인 효과 이상의 힘이 있다. 단순함이 주는 아름다움이다. 황량한 달 표면 너머로 떠 오른 지구의 모습은 실낙원에 대한 그리움도 불러 일으킨다. 후대의 인류는 한없이 아련한 심정으로 우주에 떠있는 한 점 지구를 바라보기만 할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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