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퇴원

샌. 2015. 5. 8. 10:30

폐렴으로 입원한 지 열흘 만에 퇴원했다. 집에 와서는 밤낮없이 잠만 자고 있다. 아직 온전한 상태는 아니다. 그래도 집에 오니 마음은 편하다. 병실 생활은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

 

병원에서는 무슨 검사를 그렇게 자주 하는지 모르겠다. CT 촬영은 어쩔 수 없다 해도 , 엑스레이와 혈액검사를 각각 다섯 번씩이나 받았다. 의사는 확인이 필요하겠지만 내 입장에서는 너무 남용된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환자가 검사를 받지 않겠다고는 할 수 없는 일이다.

 

30대 중반에 디스크 수술을 받은 이래 오랜만에 병원 신세를 졌다. 병실은 3인실에 있었다. 독실은 부담이 너무 크고, 다인실은 신경 쓰이는 게 많았기 때문이다. 코를 심하게 고는 편이라 다른 사람의 수면을 방해하는 것도 두려웠다. 서로 생활 스타일이 다른 사람이 모여 있으니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로서는 밤에 시끄러운 TV 소리를 억지로 들어야 하는 게 고역이었다.

 

3인실은 보험 적용이 되지 않으니 잠시 묵어가는 병실이다. 사람들은 대개 하루나 이틀 정도 머무르다 다인실에 자리가 나면 옮겨간다. 열흘 입원해 있는 동안 들고나는 사람을 관찰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환자 본인보다 찾아오는 방문객을 통해 그 사람의 정체성이 잘 드러난다. 중소도시의 병원이다 보니 세련됨은 부족하지만 투박한 인정이 느껴져서 흐뭇했다.

 

그동안 병원과 현대 의학에 대해 거부감이 있었다. 어지간한 것은 참고 병원에 가질 않았다. 2년마다 나오는 정기 검진이나 예방 접종도 일부러 기피했다. 그런데 이번에 병원 신세를 지면서 이런 생각이 독단이라는 걸 깨달았다. 버티기만 하다가 폐렴이 더 악화되었다면 훨씬 더 고생을 했을 것이다. 약과 병원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것도 문제지만 나 같은 경우도 바람직하지는 않다.

 

돌아보니 폐렴이 찾아온 근인과 원인이 분명히 드러난다. 절제하지 못한 내 생활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겠다. 주제 파악을 못하고 너무 까불었다. 인생사가 그렇듯 언제 무슨 일이 닥칠지는 아무도 모른다. 살아가는 매 순간이 선물이 아닌가 싶다. 안다고 하면서 무시하고 소홀히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좀 더 겸손하고 진지해져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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