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한화 야구

샌. 2015. 6. 3. 13:19

4월 하순부터 집과 병원에서 고립된 생활을 하다 보니 가까이하게 된 게 야구 보기다. 책도 옆에 두었지만 손이 가지는 않았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재미난 소설책을 구하기 위해 신경 쓰기도 싫었다. 그러다 보니 야구 중계를 보는 재미에 빠졌다. 서너 시간은 시름을 잊고 지낼 수 있기 때문이다.

 

1982년에 프로야구가 출범했을 때는 나도 팬이었다. 군사 독재 정권이 우민화 정책으로 시작했다는 걸 모르는 바 아니지만 관심이 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내가 응원한 팀은 'MBC 청룡'이었고 김재박 선수를 좋아했다. 잠실 야구장에도 직접 구경하러 갔고, 운동장에서 선수가 던져주는 사인볼을 받기도 했다. 승부에 연연한 결과 응원하는 팀이 지면 속이 상해 성질을 부리다가 아내한테 지청구를 듣는 건 다반사였다.

 

그러다가 'LG 트윈스'로 이름이 바뀌고 좋아하던 선수들이 떠나면서 야구에 대한 관심도 시들해졌다. 40대 이후부터는 국내 야구와는 완전히 멀어졌다. 가끔 외국에서 활동하는 선수들 중계만 볼 뿐이었다. 일본이나 미국 야구를 보다가 국내 야구를 보면 수준 차이가 느껴져 더욱 그랬다.

 

오랜만에 야구를 보니 아쉬운 점이 있다. 홈플레이트 뒤쪽 본부석에 무슨 광고가 그렇게 많이 붙어 있는지 모르겠다. 돈도 좋지만 너무 눈에 거슬린다. 깔끔하게 해 놓으면 화면이 훨씬 아름답고 구장 이미지도 좋을 텐데 말이다.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단견이다. 그리고 선수들이 침을 안 뱉었으면 좋겠다. 어떤 사람은 습관이 되어 있다. 예전보다 야구장 분위기는 많이 밝아졌다. 관람석도 관중 위주로 만들어져 있다. 잔디밭에서 텐트도 치고 고기도 구워 먹으며 야구를 구경한다. 바람직한 변화다.

 

끝까지 긴장을 놓을 수 없는 게 야구의 매력이다. 홈런 한 방이면 한순간에 뒤집힌다. 그래서 야구는 9회 말 투 아웃부터라고 한다. 축구와는 다르다. 축구에는 승부가 후반전 44분부터라는 말이 없다. 3:0만 되어도 이미 이기고 지는 건 결정되었다. 야구는 공격과 수비가 규칙적으로 반복되는 게 마치 파도의 밀물과 썰물 같다. 리듬감을 즐기는 운동이다.

 

'한화 이글스'는 작년까지 3년 연속 꼴찌 팀이었다. 그런데 올해 들어 감독이 바뀌면서 성적이 좋아지고 지금은 승률 5할을 지키고 있다. 스타 플레이어도 별로 없이 정신력으로 싸우고 있다. 게임도 쉽게 지는 법 없이 악착같이 물고 늘어진다. 처음에는 어쩌다 보게 되었는데 며칠 지나지 않아 그 매력에 흡인되었다. 어떤 사람은 '마리환화'라고 부른다. 그래서 한 달 넘게 환화 중계는 열심히 보고 있다. 마침 둘째가 태블릿을 선물해 줘서 침대에 누워 보기도 편하다.

 

약자를 응원하게 되는 건 인지상정이다. 그렇게 시작된 것이 이젠 한화 팬 비슷하게 되었다. 더 성적이 나쁜 팀과 붙어도 한화를 응원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안타깝게 지게 되면 기분이 상한다. 제삼자의 객관적인 구경꾼이 못 되는 것이다. 내 감정이 한화가 이기고 지는 데 따라 오락가락한다. 즐기는 것으로 그쳐야 하는데 결코 바람직하지 못한 현상이다.

 

이제는 한화와도 정을 떼야 할 것 같다. 그동안은 누워 있는 무료한 시간을 잊으려 야구의 도움을 받았지만, 지금은 굳이 그렇게 할 필요가 없다. 재미도 좋지만 매일 서너 시간을 TV 앞에 앉아 있는 것은 시간 낭비다. 가끔은 모르지만 매일 야구 채널로 돌리는 것은 고쳐야겠다. 그러나 내가 힘들 때 도움을 준 한화 야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앞으로도 선전하기를 기원한다. 고마워, 한화 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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