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입원실 유감

샌. 2015. 6. 17. 09:39

메르스 때문에 나라가 시끄럽다. 어제까지 사망자가 19명, 확진자가 154명이고, 격리자는 5천 명이 넘었다. 첫 환자가 메르스 증상을 보인지 한 달 동안의 피해다. 하루에 40명이 자살하고, 교통사고로 20명씩 죽어도 사람들은 무감각하지만 전염병에는 굉장히 민감하다. 전염병에 대한 두려움은 인간 유전자에 내재되어 있는 것 같다. 의학에 무지하던 시절, 한 번 창궐하면 수백만 명씩 죽어 나갔던 전염병은 공포였을 것이다.

 

메르스 바이러스는 우리나라에서 유독 전염성이 강해 보인다. 그 원인 중 하나로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병실 문화를 꼽는다. 환자가 입원하면 가족이 간병하고, 입원실은 방문하는 외부인으로 북적인다. 전염병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메르스 발생 전이지만 지난달에 열흘간 입원해 있으면서 느낀 점이 많다. 환자에게는 심신의 안정이 필요한데 현재 우리나라 입원실은 전혀 그렇지 않다. 개인적으로는 입원실 가운데 벽에 걸려 있는 TV가 제일 문제였다. TV를 좋아하지 않는 나로서는 종일 시끄러운 소리를 들어야 하는 건 고역이었다. 환자들이 TV를 보며 시간을 보내고 위안을 받는 건 이해가 간다. 그러나 소리는 개인 이어폰으로 들을 수 있게 하면 될 텐데 아직까지 병실은 어수선한 시외버스 대합실 분위기다.

 

낮에는 그나마 괜찮은데 밤늦은 시간에도 TV를 켜 놓고 있으면 짜증이 난다. 여러 사람이 모인 데는 밤낮없이 TV를 사랑하는 사람이 꼭 있다. 참다가 안 돼서 싫은 소리를 하기도 했지만 그러면 내 마음이 불편해서 괴로운 건 마찬가지였다. 차라리 수면제의 도움을 받는 게 나았다. 병을 고치러 가서 더 스트레스를 받는다.

 

문병 오는 사람도 문제다. 여러 명이 한꺼번에 오면 너무 시끄럽다. 한 시간 넘게 떠들다 가는 사람도 있다. 당사자는 즐거울지 몰라도 옆의 환자는 고스란히 피해를 받는다. 쉬고 싶어도 편히 쉬지를 못한다. 옆 침대에 개신교 장로가 있었는데 교회에서 찾아오는 사람들로 문전성시였다. 나중에는 본인도 겸연쩍었는지 주보에 입원 소식이 실리는 바람에 이렇게 되었다며 멋쩍게 웃었다. 개신교 신자들의 수다는 확실히 일반인들보다 한 수 위라는 걸 그때 알았다. 이분은 혼자 있을 때는 스마트폰으로 설교를 크게 틀어놓고 들었다. 열성 신자는 경계해야겠다는 걸 배웠다.

 

꼭 메르스 때문이 아니라 입원실을 직접 체험해 본 입장에서 우리나라 병실 문화는 바뀌어야 한다. 첫째, 조용한 병실을 위해 TV 청취는 개인 이어폰을 사용하도록 한다. 조용히 독서를 하고 싶은 사람도 많기 때문이다. 둘째, 문병 시간은 제한해야 한다. 시도 때도 없이 찾아오는 문병객으로 너무 시달린다. 셋째, 병간호는 병원에서 맡아야 한다. 지금처럼 보호자가 상주해서는 깨끗하고 조용한 병실이 유지되지 못한다. 이번 메르스처럼 부지불식간에 외부로 세균이 전파될 위험도 크다.

 

환자가 되면 인간이 아니라 현대 의료의 처치 대상으로 변한다. 기계적인 치료 과정에 흡수되어 수동적으로 반응할 수밖에 없다. 영혼이 빠져나간 몸뚱이만 남은 것 같아 슬펐다. 현대 의학의 고마움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게 몸의 아픔보다 더 고통스러웠다. 결론은 아프지 말아야겠다는 것이다. 아픈 사람만 서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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