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결혼 기차 / 문정희

샌. 2015. 6. 7. 09:16

어떤 여행도 종점이 있지만

이 여행에는 종점이 없다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기 전에

한 사람이 기차에 내려야 할 때는

묶인 발목 중에 한쪽을 자르고 내려야 한다

 

오, 결혼은 중요해

그러나 인생은 더 중요해

결혼이 인생을 흔든다면

나는 결혼을 버리겠어

 

묶인 다리 한쪽을 자르고

단호하게 뛰어내린 사람도

이내 한쪽 다리로 서서

기차에 두고 온 발목 하나가

서늘히 제 몸을 부르는 소리를 듣는다

그래서 서둘러 다음 기차를 또 타기도 한다

 

때때로 차창 밖을 내다보며

그만 이번 역에서 내릴까 말까

아이들의 손목을 잡고

선반에 올려놓은 무거운 짐을 쳐다보다가

어느덧 노을 속을

무슨 장엄한 터널을 통과하는

 

종점이 없어 가장 편안한 이 기차에

승객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 결혼 기차 / 문정희

 

 

이기적인 욕심을 떼어놓고 결혼을 말할 수 있을까. 순수한 사랑으로 맺어지는 쌍도 드물게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많은 결혼이 겉은 사랑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속내는 상대에게서 덕을 보려는 심보로 가득하다. 상견례로부터 식장에 입장할 때까지의 과정을 지켜보면 결혼은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임을 부정하기 어렵다. 인간관계에서 결혼만큼 여러 조건을 따지는 것도 없다. 결혼해서도 기대에 못 미치면 철천지원수로 변하기도 한다.

 

시에 나오는 한 구절에 눈길이 간다. "결혼은 중요해, 그러나 인생은 더 중요해." 오늘도 결혼 기차에는 탑승하려는 손님으로 분주하다. 여행 가방을 들고, 밝고 환한 미소를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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