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호기심

샌. 2015. 7. 6. 18:37

8개월 된 손자는 이제 기어 다니기 시작한다. 가만히 보면 아무렇게나 돌아다니는 게 아니고 작은 몸이 나아가는 목표가 있다. 시선을 사로잡는 대상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아기의 눈이 꽂히는 것은 장난감이 아니라 스마트폰이나 TV 리모컨 같은 전자기기라는 게 신기하다. 특히 리모컨만 보면 먹이를 발견한 매의 눈이 된다. 몸이 굳어지고 돌진한 태세를 갖춘다. 희한하다. 검은 직사각형 플라스틱 막대기의 무엇이 아기를 사로잡는지 모르겠다. 요사이 아이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스마트 기기에 익숙해지는가 보다.

 

손주를 지켜보면서 인간이 동물과 다른 특징이 호기심이라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일부 영장류의 새끼도 주변에 호기심을 가지지만 인간에 비할 바가 아니다. 아기의 눈은 세세하게 주위를 스캔하는 카메라 같다. 낯선 것은 경계하고, 낯익은 것에는 호감을 나타낸다. 그리고 좋아하는 것에 대한 집념이 대단하다. 원시 시절에 익힌 생존 본능 이상의 무엇이 인간에게는 있다. 호기심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특징이다.

 

호기심이야말로 자연계에서 인간을 지금의 위치까지 이끈 힘이다. 호기심과 탐구 정신이 없었다면 인간 역시 자연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는 한 종의 동물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을 진화 사다리의 꼭대기까지 밀어 올린 발단은 호기심에서 시작되었다. 호모 사피엔스가 아프리카를 떠나 전 세계로 퍼져나간 것도 호기심이 작용했을 것이다. 우리는 해가 뜨는 동쪽을 향해 무작정 발걸음을 옮긴 어느 가족의 후예들이다.

 

그러나 호기심에는 폭력성이 숨어 있다. 좋아하는 것을 쟁취하기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저돌성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심해지면 만족을 모르는 탐욕으로 나아간다. 인류 역사의 탐험과 개척 뒤에는 늘 어두운 그림자가 있었다. 지나친 호기심은 부작용을 낳는다. 미래에 대한 호기심과 열정이 디스토피아를 불러올지 모른다. 현대 문명은 막다른 골목을 향해 질주하는 것 같다. 브레이크 없는 호기심은 위험하다.

 

아기의 작은 행동에서 이런 사실들을 유추하게 된다. 아기에게서 나오는 에너지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잠잘 때 외에는 끊임없이 움직이고 주변을 살핀다. 무엇이건 만지고 던지고 빨아봐야 한다. 가장 왕성한 호기심을 나타낼 때가 유아기가 아닌가 싶다. 강력한 집착 역시 이 시기에 보인다. 유아기는 세상이 온통 신기한 것투성이다. 물불 가리지 않고 달려든다. 인류 행동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노년이 되면 호기심이 줄어든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이란 없다는 걸 체험으로 안다. 눈을 끄는 신기한 것이나 화려한 것에 현혹되지 않는다. 그러나 외부 세계에는 흥미를 덜 느낄지 몰라도 자신의 내부를 향한 시선은 더 밝아진다. 이것이 노년기에 마땅히 갖추어야 할 자질이다. 진지해져야 할 것은 밖이 아니라 안이다. 노년의 지혜는 유아기의 호기심을 넘어서는 데서 나온다. 사라져 가는 호기심을 느긋이 지켜보는 것도 괜찮은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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