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일흔 살의 인터뷰 / 천양희

샌. 2015. 7. 23. 13:39

나는 오늘 늦은 인터뷰를 했습니다

세월은 피부의 주름살을 늘리고

해는 서쪽으로 기울었습니다

당신이 무엇이 되고 싶었느냐고

입술에 바다를 물고 그가 물었을 때

나는 내가 되고 싶었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노을이며 파도며

다른 무엇인가 되고 싶었지만

안타깝게도 늘 실패했거든요

정열의 상실은 주름살을 늘리고

서쪽은 노을로 물들었습니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해송을 붙들고 그가 물었을 때

희망을 버리니까 살았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내일에 속는 것보다

세월에 속는 것이 나았거든요

꽃을 보고 슬픔을 극복하겠다고

기울어지는 해를 붙잡았습니다

당신은 어느 때 우느냐고

파도를 밀치며 그가 물었을 때

행복을 알고도 가지지 못했을 때 운다고 말하고 말았습니다

보일까 말까 한 작은 간이역이 행복이었거든요

일흔 살의 인터뷰를 마치며

마흔 살의 그가 말했습니다

떨어진 꽃잎 앞에서도 배워야 할 일들이 남아 있다고

참 좋은 인터뷰였다고

 

- 일흔 살의 인터뷰 / 천양희

 

 

시를 읽으며 내 일흔 살을 생각한다. 해가 서쪽으로 기우는 노을의 나이, 먼 것 같은데 가까이 있다. 당신은 무엇이 되고 싶었느냐는 물음이 은근히 슬프다. 무엇이 되고 싶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되고 싶었느냐고 질문을 받게 되는 나이다. 당신은 어떻게 살았냐고, 물을 때 나는 뭐라고 대답하게 될까. 어떤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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