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선택의 가능성 / 쉼보르스카

샌. 2015. 11. 29. 11:54

영화를 더 좋아한다.

고양이를 더 좋아한다.

바르타 강가의 떡갈나무를 더 좋아한다.

도스토옙스키보다 디킨스를 더 좋아한다.

인간을 좋아하는 자신보다

인간다움 그 자체를 사랑하는 나 자신을 더 좋아한다.

실이 꿰어진 바늘을 갖는 것을 더 좋아한다.

초록색을 더 좋아한다.

모든 잘못은 이성이나 논리에 있다고

단언하지 않는 편을 더 좋아한다.

예외적인 것들을 더 좋아한다.

집을 일찍 나서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의사들과 병이 아닌 다른 일에 관해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더 좋아한다.

줄무늬의 오래된 도안을 더 좋아한다.

시를 안 쓰고 웃음거리가 되는 것보다

시를 써서 웃음거리가 되는 되는 편을 더 좋아한다.

명확하지 않은 기념일에 집착하는 것보다

하루하루를 기념일처럼 소중히 챙기는 것을 더 좋아한다.

나에게 아무것도 섣불리 약속하지 않는

도덕군자들을 더 좋아한다.

지나치게 쉽게 믿는 것보다 영리한 선량함을 더 좋아한다.

민중들의 영토를 더 좋아한다.

정복하는 나라보다 정복당한 나라를 더 좋아한다.

만일에 대비하여 뭔가를 비축해놓는 것을 더 좋아한다.

정리된 지옥보다 혼돈의 지옥을 더 좋아한다.

신문의 제 1면보다 그림 형제의 동화를 더 좋아한다.

잎이 없는 꽃보다 꽃이 없는 잎을 더 좋아한다.

품종이 우수한 개보다 길들지 않은 똥개를 더 좋아한다.

내 눈이 짙은 색이므로 밝은 색 눈동자를 더 좋아한다.

책상 서랍들을 더 좋아한다.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많은 것들을

마찬가지로 여기에 열거하지 않은 다른 많은 것들보다 더 좋아한다.

숫자의 대열에 합류하지 않은

자유로운 제로(0)를 더 좋아한다.

기나긴 별들의 시간보다 하루살이 풀벌레의 시간을 더 좋아한다.

불운을 떨치기 위해 나무를 두드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얼마나 남았는지, 언제인지 물어보지 않는 것을 더 좋아한다.

존재, 그 자체가 당위성을 지니고 있다는

일말의 가능성에 주목하는 것을 더 좋아한다.

 

- 선택의 가능성 / 비스와바 쉼보르스카

 

 

비스와바 쉼보르스카(Wislawa Szymborska, 1923~2012)는 199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은 폴란드의 여류시인이다. 스웨덴 한림원은 쉼보르스카를 가리켜 "모짜르트 음악 같이 잘 다듬어진 구조에, 베토벤의 음악처럼 냉철한 사유 속에서 뜨겁게 폭발하는 그 무엇을 겸비했다"며 극찬했다. 시인의 시선집인 <끝과 시작>을 읽을 때 느낀 건 익숙한 친근감이었다. 인류 공통의 본성에 대한 통찰, 인간과 자연에 대한 사랑, 현대 문명에 대한 비판 등 시인의 목소리는 강렬하지만 포근하다.

 

시인은 노벨상 수상 연설에서 '모름'의 소중함을 강조했다. 독재자들, 광신자들, 권력을 쟁취하기 위해 싸우는 정치가들의 공통점은 '알고 있다'고 믿는 것이다. 거기에 문제가 있다.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지 않는 지식은 세상에 치명적인 위협을 가져올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시인이라면 자기 자신을 향해 '나는 모르겠어'를 되풀이해야 한다. 시인은 자신의 작품들을 통해 이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다. 자신이 모르고 부족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야말로 이 시대를 구원할 정신이라고 시인은 본다. 겸손이야말로 쉼보르스카의 특징 중 하나인 것 같다.

 

<끝과 시작>에 실린 작품 중 세 편을 더 골라 보았다.

 

 

두 번은 없다.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런 연습 없이 태어나서

아무런 훈련 없이 죽는다.

 

우리가, 세상이란 이름의 학교에서

가장 바보 같은 학생일지라도

여름에도 겨울에도

낙제란 없는 법.

 

반복되는 하루는 단 한 번도 없다.

두 번의 똑같은 말도 없고,

두 번의 한결같은 입맞춤도 없고,

두 번의 동일한 눈빛도 없다.

 

어제, 누군가 내 곁에서

네 이름을 큰 소리로 불렀을 때,

내겐 마치 열린 창문으로

한 송이 장미꽃이 떨어져 내리는 것 같았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함께 있을 때,

난 벽을 향해 얼굴을 돌려버렸다.

장미? 장미가 어떤 모양이었지?

꽃이었던가? 돌이었던가?

 

힘겨운 나날들, 무엇 때문에 너는

쓸데없는 불안으로 두려워하는가.

너는 존재한다 - 그러므로 사라질 것이다

너는 사라진다 - 그러므로 아름답다

 

미소 짓고, 어깨동무하며

우리 함께 일치점을 찾아보자.

비록 우리가 두 개의 투명한 물방울처럼

서로 다를지라도....

 

- 두 번은 없다 / 쉼보르스카

 

 

갑작스러운 열정이 둘을 맺어주었다고

두 남녀는 확신한다.

그런 확신은 분명 아름답지만,

불신은 더욱더 아름다운 법이다.

 

예전에 서로를 알지 못했으므로

그들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오래전에 스쳐 지날 수도 있었던

그때 그 거리나 계단, 복도는 어쩌란 말인가?

 

그들에게 묻고 싶다.

정말로 기억나지 않느냐고-

언젠가 회전문에서

마주쳤던 순간을?

인파 속에서 주고받던 "죄송합니다"란 인사를?

수화기 속에서 들려오던 "잘못 거셨어요"란 목소리를?

- 그러나 난 이미 그들의 답을 알고 있다.

아니오, 기억 나지 않아요.

 

이미 오래전부터

'우연'이 그들과 유희를 벌였다는 사실을 알면

그들은 분명 깜짝 놀랄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가 운명이 될 만큼

완벽하게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

그렇기에 운명은 다가왔다가 멀어지곤 했다.

길에서 예고 없이 맞닥뜨리기도 하면서,

낄낄거리고 싶은 걸 간신히 억누르며,

옆으로 슬며시 그들을 비껴갔다.

 

신호도 있었고, 표지판도 있었지만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제대로 읽지 못했음에야.

어쩌면 삼 년 전,

아니면 지난 화요일,

누군가의 어깨에서 다른 누군가의 어깨로

나뭇잎 하나가 펄럭이며 날아와 앉았다.

누군가가 잃어버린 것을 다른 누군가가 주웠다.

어린 시절 덤불 속으로 사라졌던

바로 그 공인지 누가 알겠는가.

 

누군가가 손대기 전에

이미 누군가가 만졌던

문고리와 손잡이가 있었다.

수화물 보관소엔 여행 가방들이 서로 나란히 놓여 있다.

어느 날 밤, 깨자마자 희미해져버리는

똑같은 꿈을 꾸다가 눈을 뜬 적도 있었다.

 

말하자면 모든 시작은

단지 '계속'의 연장일 뿐.

사건이 기록된 책은

언제나 중간부터 펼쳐져 있다.

 

- 첫눈에 반한 사랑 / 쉼보르스카

 

 

내가 '미래'라는 낱말을 입에 올리는 순간,

그 단어의 첫째 음절은 이미 과거를 향해 출발한다.

 

내가 '고요'라는 단어를 발음하는 순간,

나는 이미 정적을 깨고 있다.

 

내가 '아무것도'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이미 무언가를 창조하게 된다.

결코 무(無)에 귀속될 수 없는

실재하는 그 무엇인가를.

 

- 가장 이상한 세 단어 / 쉼보르스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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