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엄마와 갓난아기 / 김은영

샌. 2015. 12. 3. 11:04

내 동생 갓난아기

똥을 싸면 소리 내어 운다

"우리 아기

소화 잘 됐네

어쩜 똥도 이뻐라"

엄마가 기저귀 갈고

엉덩이 다독여주면

아기는 방싯방싯 웃는다

 

중풍 걸린 외할머니

똥을 싸면 눈을 감고 씻긴다

"잡수신 것도 없는데

똥은 왜 이리 많이 싸요

냄새는 왜 이리 구려요"

엄마가 기저귀 갈고

물수건으로 닦아 드리면

가만히 눈물만 흘린다

 

아주아주 오래 전에

외할머니가 엄마였고

엄마는 갓난아기였다

 

- 엄마와 갓난아기 / 김은영

 

 

손주가 생기고 보니 오직 내리사랑뿐이란 걸 알겠다. 한 대 더 내려갔다고 자식 키울 때와도 비교할 수 없다. 기꺼이든 마지못해든 손주를 봐주는 건 손주가 이쁘기도 하지만 내 새끼의 고생을 덜어주려는 마음도 크다. 전부 아래로만 쏠리는 사랑이다. 위와 견주면 미안하고 송구하다. 우리는 부모한테 진 빚을 자식을 통해 갚는다. 어쩌겠는가, 이것은 유전자의 지언명령인 것을.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부음 / 함기석  (0) 2015.12.13
백조 / 메리 올리버  (0) 2015.12.08
선택의 가능성 / 쉼보르스카  (0) 2015.11.29
직소포에 들다 / 천양희  (0) 2015.11.24
공기 / 이시영  (0) 2015.1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