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부음 / 함기석

샌. 2015. 12. 13. 15:53

첫눈이다

생선장수 트럭이 지나간 복대놀이터 골목

유모차에 내리는 흰

사과 꽃이다

 

아기가 살짝

맨발로 디디면

사과 향, 차고 흰 웃음이 간질간질 발가락을 타고

얼굴로 올라와

팔랑팔랑 나비가 되어 날아가는

 

첫눈이다

먼 훗날, 죽음이 빈 배를 나의 집 마당으로 밀고 올 때

노을 속에서 들려올

물새소리

 

오늘밤 그 소리

뒤뜰에

차곡차곡 쌓인다

 

- 부음 / 함기석

 

 

첫눈을 죽음의 소식과 연관시킨 시인의 발상이 기발하다. 첫눈과 아기와 나비로 연상되던 이미지가 홀연히 죽음으로 치환된다. 처음에는 이게 뭐지, 하고 의아해하다가 첫눈에 대한 환호나 부음에 놀라는 마음이 서로 멀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나는 과연 '죽음이 빈 배를 나의 집 마당으로 밀고 올 때' 첫눈처럼 맞이할 수 있을까? 아득해진다.

 

가까운 분의 부음이 오늘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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