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시시하다

샌. 2016. 3. 14. 18:40

시시포스는 신들의 비밀을 누설한 벌로 바위를 밀어올려야 하는 벌을 받는다. 큰 바위를 죽을 힘을 다해 산 정상까지 올려놓으면 바위는 저절로 산밑으로 굴러내린다. 그러면 다시 꼭대기까지 밀어올려야 한다.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영원한 형벌이다.

 

시시포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고통과 절망 속에서 비탄의 눈물만 흘리고 있었을까? 아니었을 것이다. 시시포스는 아마 인생을 시시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고통을 고통으로 알아챌 때 고통에 매몰되지 않는다. 인생을 장밋빛으로 낙관할 때 고통은 고통이 된다. 삶의 부조리와 정면으로 대면할 때 살아낼 힘이 생긴다. 시시포스의 힘이다.

 

'시시하다'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대단한 데가 없어서 보잘것없다'로 나와 있다. 그렇다. 인생을 시시하다고 보는 데서 시시포스의 힘이 생긴다. 시시포스는 '시시함의 힘'이다.

 

'시시하다'는 경멸적으로 쓸 단어가 아니다. 시시하게 살아가는 것도 아무나 하는 일이 아니다. 삶 자체에 아무런 윤색도 하지 않고 담백하게 살아내는 사람에게 붙이는 명예로운 칭호다.

 

퇴직 후 지나온 삶을 돌아본다. 번쩍이고 화려하게 살려고 하였다면 부끄러운 일이다. 순간의 만족을 줄지언정 진정한 내면의 기쁨은 주지 않는 것들이다. 늘 말하고 싶다. 아, 시시하게 잘 보냈다. 이룰 것도, 내세울 것도 없는 시시한 삶,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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