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샌. 2016. 1. 29. 10:58

국민교육헌장이 나온 게 1968년 12월, 내가 고등학교 1학년 때였다. 1968년은 북한에 의한 청와대 습격, 울진 삼척 무장공비 침투, 푸에블로호 사건이 터져 남북관계가 최고로 긴장 상태였던 해였다. 그리고 박정희 장기 집권의 시작이었던 삼선 개헌의 전해였다.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났다." 국민교육헌장은 이렇게 시작된다. 개인의 자유나 행복보다 국가 발전을 우선하자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중간에 나오는 "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임을 깨달아"라는 구절이 이를 잘 말해준다. '공익', '질서', '능률', '애국', '애족'이라는 단어에서 보듯 권리보다는 집단 구성원으로서의 책임과 의무를 강조한다. 국민교육헌장에 담긴 기본 이데올로기는 국가에 대한 충성과 반공이라고 생각한다.

 

그때는 이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워야 했다. 애국 조회나 행사 때는 국민교육헌장이 낭독되었다. 애국가도 4절까지 다 불렀다. 정권이 노리는 것은 무의식적인 세뇌 작용이었을 것이다. 독재자에게는 말 잘 듣는 국민이라야 다루기 쉽기 때문이다. 철부지였던 그 시절에는 아무 의심 없이 국민교육헌장을 받아들였다. 당연히 그래야 한다고 믿기도 했을 것이다. 어느 선생님도 헌장의 내용에 대해 비판하지 않았다. 속으로는 어땠는지 몰라도 겉으로는 드러내기 어려운 시대였다.

 

교육이 특정 시대의 이념을 전파하는 도구가 되어서는 안 된다. 교육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에 기반을 두어야 한다고 나는 믿는다. 그런 점에서 국민교육헌장은 일본 강점기 때의 교육칙어와 마찬가지로 집단주의를 기치로 내건 나쁜 선언이라고 생각한다. 집단주의는 특정 집단의 목표를 위해 개인의 자유와 행복은 유보될 수 있다는 사상이다.

 

나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 땅에 태어난 게 아니다. 나는 '나'라는 유일한 인격체로서 나 자신의 행복과 자유를 누리기 위해서 이 땅에 태어났다. 물론 공동체 안에서 타인에 대한 배려와 협력이 중요한 건 물론이다. 나를 소중히 여기면 다른 사람도 소중하게 여기게 되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집단주의는 인간을 수단화하고 가용할 자원으로 취급한다. 전체와 다른 의견을 용납하지 않는다. 개인에 대한 존중이 결핍되어 있다.

 

나는 개인주의자며 자유주의자다.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할지라도 규격화하거나 획일화하는 것에 반대한다. 나는 가훈도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타자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한 어떤 사상을 가지는 것도, 어떤 삶을 사는 것도 자유다. 국가나 민족 이전에 개인이 있다. 결코 조롱 속의 행복을 바라지 않는다.

 

사상의 자유라는 관점에서 볼 때 6, 70년대는 암흑의 시기였다. 권력자는 사고를 통제했고 정치적 반대 의견을 허용하지 않았다. 애국과 반공 이데올로기를 주입해서 어릴 때부터 자신의 입맛에 맞는 국민으로 길들이길 원했다. 국민교육헌장을 제정한 이유다. 그러나 그때는 몰랐다. 열심히 공부해서 나라에 필요한 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을 것이다. 어렸으니 이해 못 할 바도 아니다. 얼마 전에 국무총리가 "애국가를 4절까지 완창해야 나라 사랑의 기본"이라는 발언을 했다. 그런데 이런 말을 하는 지도층의 군 면제 비율이 일반인의 다섯 배가 된다는 사실이 무엇을 말하는지 그저 신기하기만 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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