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살이의꿈

헐렁한 게 좋아

샌. 2016. 2. 16. 11:56

몇 주 전에 아내가 겨울 티셔츠를 사 왔다. 색깔이나 감촉이 마음에 들었다. 사이즈가 95라고 포장지 비닐에 적혀 있어 더 확인하지 않은 채 라벨을 떼어버리고 옷장에 걸어두었다. 95나 100이면 내 몸에 잘 맞기 때문이었다. 며칠 전에 옷을 꺼내 입으니 헐렁한 게 너무 컸다. 그제서야 옷에 붙은 사이즈를 보니 105였다. 포장지 표시가 잘못된 것이었다.

 

이미 교환할 수도 없게 된 상태라 그냥 입기로 했다. 목에는 주먹 하나가 들락거리고 허리 부분은 몇 겹이나 주름이 졌다. 다행히 겨울 티셔츠라 겉옷 안에 숨어서 볼품을 따지지 않아도 되었다. 전에는 꽉 조이는 옷을 즐겨 입었다. 이 옷은 몸에 착 달라붙는 느낌은 없지만 굉장히 편안하다. 한복을 왜 편하다고 하는지 알 것 같다. 새로운 발견이었다.

 

아마 젊었을 때였으면 안 입는다고 했을지 모른다. 자신은 차치하고 다른 사람 시선을 창피하게 여기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젠 그런 걸 별로 의식하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어제는 여러 사람이 모인 데서 겉옷을 벗고 이 티셔츠를 드러냈는데 아무도 신경 쓰는 사람이 없었다. 결국 내 스스로 걱정만 한 셈이었다. 타인은 내 옷에까지 관심을 두지는 않는다.

 

어쩔 수 없이 입게 된 옷이지만 이젠 좋아하게 되었다. 살펴보니 옷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나 세상살이도 마찬가지다. 빡빡한 것보다는 느슨한 게 좋다. 완벽한 사람보다는 뭔가 모자라는 듯한 사람이 편하다. 규율 잡힌 세상보다는 자유로운 세상이 낫다. 따라야 할 규범을 자꾸 만드는 나라는 질색이다.

 

요사이 정치나 세상을 보면 답답했던 70년대가 자꾸 떠오른다. 마치 사이즈 90을 입은 것 같다. 그때는 그런 옷이나마 감지덕지하며 참고 견뎌야 하는 줄 알았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한 번 느슨하고 편한 맛을 보면 다시는 옛 옷을 입기 힘들다. 똑똑해진 소비자가 당장 교환을 요구할 것이다. 처음에는 어색해도 입어보면 안다. 헐렁한 옷이 편하다는 걸. 옷이나 정치나 별반 다르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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