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말 없는 아이

샌. 2016. 5. 3. 11:20

지인 중에 닉네임이 '머거주기'인 분이 있다. 처음에는 먹성이 좋다는 의미인 줄 알았는데, 설명을 들어보니 어렸을 때 말을 받아먹기만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는 것이다. 그만큼 말 없는 아이였다는 뜻이다.

 

말 없기로 치면 나도 그분 못지않았다. 어머니가 혀를 차며 자주 들려주는 일화가 있다. 아직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이었으니 여섯 살 때쯤 되었을 것이다. 그때는 5일마다 열리는 장에 따라가는 게 제일 즐거운 날이었다. 신나는 볼거리도 많았을뿐더러, 군것질거리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적어도 사탕 몇 알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었다. 집에서 장터까지는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걸렸다.

 

그날 나는 할머니를 따라 장에 갔다. 할머니는 곡식을 팔고는 호미를 비롯해 몇 가지 물건을 샀을 것이다. 볼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쉬려고 앉는데 내가 말했다고 한다. "거기다 호미를 두고 왔는데...." 할머니는 깜짝 놀랐다. 호미를 사서 계산만 하고는 그냥 두고 왔던 것이다. 할머니는 30분을 부리나케 달려가서 호미를 찾아왔다고 한다. "글쎄, 이놈이 입을 닫고 있다가는 그제서야 말하더라니까."

 

형광등도 보통 형광등이 아니다. 할머니가 호미를 두고 가는 걸 보고서도 왜 알려주지 않았을까. 나도 그때 상황이 어렴풋이 기억나지만 무슨 심보였는지는 헤아려지지 않는다. 말해야 하는 타이밍을 놓치니 망설이고 망설이다 그렇게 되었는지 모른다. 하여튼 어렸을 때 나는 말이 드물고 반응은 느렸다.

 

그러면서 외골수이기도 했다. 1학년 때는 선생님이 좌측통행을 하라고 해서 학교를 오갈 때 길 왼쪽으로만 걸어 다녔다고 한다. 한창 뛰노는 아이들이 학교를 벗어나면 제멋대로인 게 보통인데, 30분 넘게 걸리는 길을 선생님 말씀만 고집하며 걸을 정도로 하나밖에 모르는 아이였다. 그런 성벽은 어른이 되어서도 남아 사회생활을 하는 데 걸림돌이 되기도 했다.

 

어릴 때부터 말 훈련이 안 되어선지 성인이 되어서도 언어로 표현하는 데는 서툴렀다. 그리고 원칙만 지키려는 내가 싫었다. 고치려고 애썼지만 나아진 건 별로 없었다. '원판 불변의 법칙'은 나한테도 예외가 아니었다. 모자라는 대로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게 된 건 나이 50이 넘어서였다. '생긴 대로 살자!'주의가 마음이 편했다. 말이 없는 대신 이렇게 글 쓰는 데 재미를 붙이고 있는지도 모른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나를 위한 글쓰기  (0) 2016.05.20
졸혼  (0) 2016.05.15
한 장의 사진(22)  (0) 2016.04.22
남 일 아니야  (0) 2016.04.03
4:1  (0) 2016.03.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