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우리나라 풀 이름을 위한 서시 / 윤주상

샌. 2016. 8. 2. 12:46

우리나라 풀 이름들 외고 있으면

씨감자로 배를 채운 저녁나절처럼

왜 그렇게 속이 쓰리고 아려오는지

 

쥐오줌풀, 말똥가리풀, 쇠뜨기풀, 개구리발톱, 개쓴풀, 개통발, 개차즈기, 개씀바귀, 구리때, 까마중이, 쑥부쟁이, 앉은뱅이, 개자리, 애기똥풀, 비짜루, 질경이, 엉겅퀴, 말똥비름풀.....

왜 그렇게 하나같이 못나고 천박하고 상스러운 이름들뿐인지

 

며느리밑씻개풀, 쉽싸리, 개불알풀, 벌깨덩굴, 기생초, 깽깽이풀, 소루쟁이, 쇠비름, 실망초, 도둑놈각시풀, 가래, 누린내풀, 쥐털이슬, 쑥패랭이, 논냉이, 소경불알, 개망초, 색비름풀.....

왜들 그렇게 모두가 하나같이 낯뜨겁고 부끄러운 이름들뿐인지

 

쥐꼬리망초, 명주실풀, 며느리밥풀, 좁쌀풀, 속속이풀, 송장풀, 주름잎, 쐐기풀, 쑥부지깽이, 개밥풀, 겨우살이풀, 고비, 절굿대, 끈끈이주걱, 왜젓가락나물, 가막사리, 자주쓴풀.....

왜들 그렇게도 모두가 하나같이 춥고 배고프고 없이 사는 이름들뿐인지

 

우리나라

대한민국

리퍼브릭 오브 코리아

 

이 좁은 땅덩어리에 웬 놈의 인사 인물은 뭐가 또 그렇게 많은지

모두가 다 저가 잘났고 저만 똑똑하고 저만이 떳떳한데

왜 그렇게 죄도 없는 우리 풀들만 바보 병신 닮았는지

남들처럼 허리 한 번 바로 펴보지 못하고

평생을 죄인같이 땅바닥에 코를 박고 설설 기며 살아를 왔는지

 

쥐손이풀, 가시꽈리, 개지치, 골풀, 구실붕이, 가는장때풀, 날개골풀, 네귀쓴풀, 쇠똥가리풀, 갈퀴나물, 잠자리피, 갯사상자, 까치수염, 꼭두서니, 고슴도치풀, 갯는쟁이, 긴담배풀, 괴승아, 조개풀, 수박풀.....

 

성도 없는 우리나라 풀 이름들 외고 있으면

모진 목숨 모진 목숨

모질기도 질긴 목숨 천하고도 귀한 목숨

어쩌면 그렇게도 장하고 서러운지 서럽고도 장한지

외면 욀수록 남의 이름 같지 않고

어쩌면 그렇게도 네 이름 내 이름 닮았는지

우리네 거시기 쏙 빼 닮았는지

 

- 우리나라 풀 이름을 위한 서시 / 윤주상

 

 

친구가 카톡으로 보내준 시다. 우리 풀 이름에는 민중의 한과 슬픔이 담겨 있다. 동시에 질기고 모질고 강인한 생명력을 뜻하기도 한다. 수 천년 무시당하고 짓밟혔어도 여전히 우리 곁에 살아 남아 있다. 가만이 따라 읽어보면 우리 풀만큼 정겨운 이름도 없다. 민중이 붙인 이름이고, 민중의 삶이 녹아 있는 이름이기 때문이다. 숨어 있는 민중의 저항 정신도 발견한다. 우리 풀 이름을 부른다는 건 그 정신을 되살려내는 의미도 있다.

 

'시읽는기쁨' 카테고리의 다른 글

보살 / 김사인  (0) 2016.08.16
금붕어 길들이기 / 이안  (0) 2016.08.09
탄식 / 손세실리아  (0) 2016.07.27
박각시 오는 저녁 / 백석  (0) 2016.07.18
사과야 미안하다 / 정일근  (0) 201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