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금붕어 길들이기 / 이안

샌. 2016. 8. 9. 11:17

처음엔 풀 밑으로 숨기 바빴지

한 번 주고 두 번 주고

며칠 지나니

이제는 살랑살랑 마중을 오네

먹이 몇 번 주었을 뿐인데

금붕어와 나 사이에

길이 든 거야

 

길든다는 말

길들인다는 말

 

금붕어와 나 사이에

길이 든다는 거였어

살랑살랑

길을 들인다는 거였어

 

- 금붕어 길들이기 / 이안

 

 

어린왕자는 여우를 만나서 '길들인다'는 게 뭔지 묻는다. 길들여져 있지 않아서 같이 놀 수 없다고 여우가 말했기 때문이다. 여우는 이렇게 말한다. "그건 '관계를 맺는다'라는 뜻이야. 넌 아직 나에게는 다른 수많은 꼬마들과 다를 바 없는 한 꼬마에 불과해. 그러니 나에겐 네가 필요없어. 또한 너에게도 내가 필요없겠지. 난 너에겐 수많은 다른 여우와 똑같은 한 마리 여우에 지나지 않아. 하지만 네가 나를 길들인다면 우리는 서로를 필요로 하게 되지. 너는 나에게 이 세상에서 하나뿐인 존재가 될 거고....."

 

길들인다는 것은 김춘수 시인이 '꽃'에서 꽃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과 같은 의미라 할 수 있다. 두 존재 사이에 둘만의 길이 난 것이다. 이안 시인의 금붕어와 길들어진다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길들여진다'는 말을 들으면 왠지 거북해진다. 종속관계라는 부정적 의미가 먼저 연상되기 때문이다. 인간이 성장한다는 것은 사회에 길들여지는 과정이 아닐까. 시스템에 잘 적응하도록 인간을 길들이는 것이 교육 목적 중 하나인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야생의 동물이 길들여져서 오늘날의 가축이 되었다. 인간과 인간 사이든 인간과 동물 사이든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길이 드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알겠다. 그러나 '길든다'는 말 대신 '길이 난다'는 말은 어떨까? '길든다'는 워낙 거부감이 드는 말이어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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