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박각시 오는 저녁 / 백석

샌. 2016. 7. 18. 10:45

당콩밥에 가지냉국의 저녁을 먹고 나서

바가지꽃 하이얀 지붕에 박각시 주락시 붕붕 날아오면

집은 안팎 문을 횅하니 열젖기고

인간들은 모두 뒷등성으로 올라 멍석자리를 하고 바람을 쐬이는데

풀밭에는 어느새 하이얀 대림질감들이 한불 널리고

돌우래며 팟중이 산 옆이 들썩하니 울어댄다

이리하여 한울에 별이 잔콩 마당 같고

강낭밭에 이슬이 비 오듯 하는 밤이 된다

 

- 박각시 오는 저녁 / 백석

 

 

옛날 여름 저녁 풍경이 담박하게 펼쳐진다. 평안도 토속어가 감칠 맛 나는 백석 시다. 이때 도시라면 창문 닫아걸고 에어컨을 켤 것이다. 어찌 과거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마당 멍석자리에 누워 모깃불 연기 맡으며 하늘의 별을 쳐다보던 그때가 아련하다. 할머니의 부채 바람이 낯을 간지렸고. 어른들의 알 듯 모를 듯한 세상 얘기를 귓가로 들으며 스르르 잠이 들었다. 시원한 가지냉국도 다시 먹어 보고 싶다.

 

* 당콩밥: 강낭콩 넣은 밥

* 바가지꽃: 박꽃

* 박각시, 주락시: 나방 종류

* 대림질감: 다림질 할 옷감

* 한불: 한가득

* 돌우래, 팟중이: 곤충 종류

* 한울: 하늘

* 강낭밭: 옥수수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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