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별 / 류시화

샌. 2016. 9. 11. 10:26

별은 어디서 반짝임을 얻는 걸까

별은 어떻게 진흙을 목숨으로 바꾸는 걸까

별은 왜 존재하는 걸까

과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원자들의 핵융합 때문이라고

목사가 말했다. 그것은 거부할 수 없는 하나님의 증거라고

점성학자가 말했다. 그것은 수레바퀴 같은 내 운명의 계시라고

시인은 말했다. 별은 내 눈물이라고

마지막으로 나는 신비주의자에게 가서 물었다

신비주의자는 별 따위는 아예 쳐다보지도 않았다

그는 뭉툭한 손가락으로 내 가슴을 툭툭 치며 말했다 차라리

네 안에 있는 별에나 관심을 가지라고

 

그 설명들을 듣는 동안에

어느새 나는 나이를 먹었다

나는 더욱 알 수 없는 눈으로

별들을 바라본다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인도의 어느 노인처럼

명상할 때의 고요함과 빵 한 조각만으로

만족하는 것

내가 가장 싫어하는 것은 그 노인처럼

밤에 먼 하늘을 향해 앉아서

별들을 바라보는 것을 방해받는 일

 

- 별 / 류시화

 

 

별들의 후손인 우리는 왜 이렇게 조무래기가 되었나. 한 생을 아등바등거리기만 하다가 살기엔 우리의 출신은 너무 고귀한 게 아닌가. 눈이 퇴화한 지렁이처럼 우리는 고향을 잊었다. 아예 별을 바라볼 줄 모른다. 질문할 줄도 모른다.

 

건방진 말인지 모르지만 이 시는 꼭 나를 대변하는 것 같다. 과학자와 목사와 신비주의자가 가리키는 길을 비틀거리며 걸어 여기까지 왔다. 손에 잡힌 건 아무것도 없다. 이젠 기대하지 않는다. 앞으로의 바람도 마찬가지, "이제 내가 바라는 것은 명상할 때의 고요함과 빵 한 조각으로 만족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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