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여름은 싫어

샌. 2017. 8. 8. 10:58

여름의 한가운데를 지나고 있다. 낮 기온이 35도를 넘어서고, 밤에는 열대야 때문에 잠을 설친다. 도시 아파트에 사는 사람들은 시멘트 열기로 더 고생이 심하다. 다행히 이곳은 서울보다 3~4도가 낮다. 낮에는 에어컨을 틀지만, 밤이 되면 창문을 닫아야 한다. 그래도 덥고 짜증 나는 것은 별반 다르지 않다. 여름은 싫다.

 

내가 여름을 싫어하는 이유는 몸이 여름과 맞지 않기 때문이다. 젊었을 때부터 과민성대장증상으로 고생했다. 지금도 배와 냉기는 상극이다. 배에 찬 기운이 닿으면 바로 속이 싸늘해지면서 설사가 난다. 그래서 에어컨 바람을 싫어한다. 여름 차 안에서는 배에다 방석을 대고 있어야 한다. 어떨 때는 선풍기 바람에도 신호가 온다. 여름이라도 시원한 음식을 잘 먹지 못한다. 팥빙수를 좋아하지만 항상 조심스럽다. 여름이 반갑지 않다.

 

귀도 마찬가지다. 도저히 다스려지지 않는 귓속의 염증이 있다. 보통 때는 가려운 정도지만 심하면 진물이 나온다. 물기가 귀에 들어가면 안 된다. 그래서 목욕탕에도 가지 못한다. 습도 높은 여름에는 당연히 증세가 나빠진다. 자주 샤워를 해야 하는데 조심한다 해도 영향이 없을 리 없다. 여름이 반갑지 않다.

 

여름은 노출의 계절이다. 지하철을 타면 앞에 선 여자의 맨다리를 봐야 하는 일은 민망하다. 며칠 전에는 불행하게도 배꼽을 드러낸 여자가 내 앞으로 왔다. 마치 돋보기로 들여다 보듯 배꼽을 보고 있어야 했다. 다음 정거장에서 내릴까, 고민하다가 눈을 감고 견뎠다. 이런저런 신경 쓸 일이 많아지는 계절이 여름이다.

 

몇 달 전에 경험한 뉴질랜드의 여름은 한국의 여름과 맛이 달랐다. 거기도 햇볕은 따가웠으나 그늘에만 들어가면 시원했다. 반면에 우리나라 여름은 습도가 높다. 끈적끈적하면서 같은 기온이라고 훨씬 불쾌지수가 높다. 뉴질랜드는 사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데도 불구하고 건조한 기후를 보인다. 우리나라 여름은 견디기 힘들다.

 

40년 전 여름의 군대 추억은 또 어떤가. 7월에 입대했으니 신병 훈련을 한여름에 받았다. 인간의 몸에서 그렇게 물이 많이 나오는 줄은 예전엔 몰랐다. 우리 몸의 60%가 수분이라고 교실에서 가르쳤는데 실습을 그때 했다. 땀보다 더했던 건 훈련병에 대한 비인간적인 대우였다. 다행히 눈물이 땀과 섞여서 우는 걸 들키지 않아 그나마 나았다. 신나는 여름의 추억은 별로 없다.

 

나 같은 게으름뱅이는 겨울이 좋다. 겨울이야말로 안거(安居)의 계절이다. 하안거(夏安居)도 있지만 땀 흘리며 모기에 물리는 명상은 별로 어울려 보이지 않는다. 봄이나 여름보다 가을과 겨울이 좋다. 여름이 되면 귀를 더 세게 긁고, 배를 더 자주 만져야 한다. 입맛을 유혹하는 시원한 빙수도 마음대로 못 먹는다. 어서 빨리 이 여름이 지나가기를 바라며 달력을 바라본다. 다행히 어제가 입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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