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소음 노이로제

샌. 2017. 8. 21. 11:56

선생을 하면서 교실에서 제일 많이 한 소리가 "조용히 해!"였을 것이다. 어떤 경우는 수업을 시작하고 질서를 잡는데 10분 넘게 걸리기도 했다. 교사에게 수업을 방해하는 소곤대는 소리나 잡담은 엄청난 스트레스다. 아예 공부를 포기한 아이들을 달래고 꾸짖는 데 에너지의 과반이 들어간다.

 

그래선지 사람의 소음은 나한테 엄청난 노이로제를 유발한다. 직업병이라고 여기고 있지만 선생을 했다고 다 그런 건 아니니 일차적으로는 내 성격 탓인 것 같다. 사람에 따라서는 만성이 되어 시끄러운 환경이 아무렇지 않을 수도 있다. 나는 그 반대다.

 

소음 노이로제는 퇴직을 하고 나서 더 심해진 것 같다. 집에서 혼자 조용히 있는 시간이 많으니 절간 같은 분위기에 길이 들었다. 어쩌다 시끄러운 환경에 노출되면 짜증부터 난다. 손주도 예외가 아니다. 어린이집에 다니는 손주는 한창 개구쟁이 짓을 할 때다. 집에 놀러 오면 가만히 있는 법이 없다. 어떤 날은 빨리 가라고 쫓아낸다. 당신은 산속에 들어가 혼자 살아야 할 사람이라고, 아내한테서 핀잔을 듣는다.

 

공공장소에서 휴대폰 통화를 하거나 잡담을 하는 소리도 여간 신경 쓰이는 게 아니다. 나에게 그 소리는 고요한 호수에 계속 돌을 던지는 것과 비슷하다. 정신이 흐트러지고 집중할 수 없다. 주위를 둘러보면 다른 사람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제 할 일을 한다. 나만 너무 예민한 것 같다.

 

분주하고 바쁘고 수선스러운 분위기는 질색이다. 여러 사람이 모인 왁자지껄한 회식 자리는 사양이다. 어디 놀러 갈 때도 사람이 없는 시간과 장소를 택한다. 어떤 사람은 시끌벅적해야 사람 사는 맛이 난다고 하는데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내가 다시 전원의 터를 고른다면 첫째 조건이 조용한 곳이어야 한다. 반경 300m 이내에 사람의 흔적이 없어야 한다.

 

올 초에 트레커와 떠났던 뉴질랜드 여행은 팀원과 스타일이 달라 힘들었다. 한 달이 넘는 긴 여행은 여행지가 어디냐 보다는 같이 가는 사람의 취향이 절대 중요함을 배웠다. 나에게는 쉼과 혼자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끊임없이 떠들고 돌아다니는 여행은 아무리 좋은 경치 구경도 피곤할 뿐이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도 앞으로의 여행은 혼자서 다니는 게 최선이라는 결론을 내린다.

 

그러나 이렇게 독불장군식으로 살다가는 얼마 안 되는 지인들마저 점점 멀어지게 될지 모르겠다. 내 취향만 고집해서야 어디 세상살이가 원만하겠는가. 반성해 보지만 수십 년간 누적된 습(習)이 쉽게 변하지 않는다. 더구나 소음 노이로제는 늙어갈수록 점점 더 기세를 떨친다. 그러다 보니 사람이 있는 곳을 자꾸 피하게 된다. 나아가고 물러날 적당한 거리가 얼마큼인지 헷갈리는 요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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