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성지(3) - 단내성지, 어농성지

샌. 2017. 9. 26. 22:02

오후 약속 때문에 집에서 가까운 성지를 택했다. 단내성지와 어농성지는 한 시간 거리라 11시 미사에 맞추기 위해 9시 30분에 출발했다. 아침 저녁으로는 쌀쌀하나 한낮은 여름볕처럼 따가운 날씨였다.

 

4. 단내성지

 

이천시 호법면에 있는 단내성지에는 다섯 분의 순교 성인이 모셔져 있다. 그중에 정은 바오로 성인은 1866년 병인박해 때 체포되어 남한산성으로 압송되었다. 이때 재종손인 정 베드로가 할아버지를 옥중에서 보살피기 위해 자수해서 함께 고초를 겪었다. 두 분은 그해 말에 백지사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버려진 정은의 시신을 가족이 찾아내 이곳에 모셨다. 여기 모셔진 성인들은 가족 사랑의 모범이 되셨기에 이곳이 성가정성지로 지정된 것 같다.

 

 

 

 

순교비와 성가정성지 표지석.

 

 

 

 

 

 

이곳은 역사가 오랜 교우촌 중의 하나였다. 또한 김대건 신부님의 흔적도 남아 있다. 은이 마을에 머물렀던 김 신부님은 고해성사를 주기 위해 이곳에 자주 들렀다고 한다.

 

 

 

정 바오로 묘소.

 

 

가을이 오기 시작하는 단내는 조용하고 차분한 분위기의 성지다. 고요히 묵상하기에 알맞다.

 

 

성지 뒷산인 와룡산에는 가볍게 산행할 수 있는 길도 잘 다듬어져 있다. 우리는 검은바위까지 다녀오는 코스를 택했다.

 

 

사람이 없는 산길에는 밤이 많이 떨어져 있었다. 알이 잘아 재미로 몇 개 주워봤다. 

 

 

 

와룡산 중턱에 있는 검은바위에서 정은 바오로 성인이 숨어지냈다고 한다. 어두운 밤을 이용해서 집에 다녀오고 했지만 결국 체포되고 말았다. 그분의 나이 62세 때였다.

 

5. 어농성지

 

어농성지는 단내성지에서 차로 10분 정도면 닿는다. 넓은 부지에 공사중인데도 있어서 약간은 어수선했다. 어농은 청소년성지라 부르고 있다.

 

 

어농은 윤유일 바오로 등 아홉 분의 시복시성 대상자를 현양하기 위한 성지로 묘지가 잘 꾸며져 있다. 주문모 신부와 최초의 여회장인 강완숙 골룸바의 묘도 있다.

 

 

성지 들어가는 입구.

 

 

 

 

탕자를 껴안아주는 아버지 상.

 

 

 

십자가의 길을 따라 묘역으로 들어간다.

 

 

 

주문모 신부 동상.

 

 

윤유일 바오로(1760~1795) 동상. 윤유일 바오로는 권철신에게 글을 배우고, 그의 아우 권일신에게 천주 교리를 배워 입교했다. 1789년에 교회 밀사로 선발되어 상인 겸 마부 명목으로 북경에 가서 구베아 주교를 만나 사제 파견을 간청했다. 그때 한국인 최초로 견진성사을 받았다. 1790년에 다시 북경에 가서 사제 파견을 부탁하고 성물과 포도나무 묘목을 받아 왔다. 이런 노력으로 1794년에 주문모 신부가 들어올 수 있었다.

 

하지만 1795년에 체포되어 35세의 나이로 포도청에서 장살되었다. 시신은 강물에 던져진 것으로 보이는데 현제 이곳에 있는 묘는 의묘로 조성되어 있다. 한국 천주교회가 처음으로 성직자를 모셔 명실공히 교회의 모습을 갖추는 데 윤유일 바오로의 공헌이 상당하다고 하겠다.

 

 

죽기 직전 윤유일 바오로의 마지막 증언은 이랬다고 한다.

 

"천만번 죽을지라도 저 십자형틀에 묶이신 분을 모독할 수 없소."

 

순교 성인의 믿음 앞에서는 그저 고개만 저어질 뿐이다. 만약 나라면 어땠을까, 단 한 시간도 고문을 견뎌내지 못 했을 것이다. 과거에도 앞으로도 성인을 닮을 자신은 도저히 없다. 엔도 슈샤쿠의 <침묵>에 나오는 키치치로에 동료 의식을 느끼게 되는, 어쩔 수 없는 속물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

 

 

 

'사진속일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동해는 비  (0) 2017.10.08
2017 추석  (0) 2017.10.04
만해 길을 걷다  (0) 2017.09.25
가을 오는 뒷산  (0) 2017.09.19
부산 & 대마도(3)  (0) 2017.09.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