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속일상

팽목항과 무위사

샌. 2018. 4. 21. 11:47

 

가만히 있으라, 해 놓고는 자기들은 허겁지겁 탈출했다. 그러면서 발걸음이 떨어졌을까. 너무 어이없으니 그 뒤에 어두운 음모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기울어진 선실에서 아이들이 천진스레 찍은 동영상을 보았다. 다가오는 마지막을 예감하지 못한 채 아이들은 끝까지 구조의 희망을 붙잡고 있었을 것이다. 그러다 물이 코 밑까지 차올랐고, 뒤에 발견된 아이들 손가락은 전부 상처투성이였다고 한다.

 

팽목항에 찾아간 어느 날 저녁, 화나고 슬프고 많이 많이 미안했다.....

 

 

 

 

 

 

 

 

숨가쁘게 기다리다 끝끝내 접히고 만,

저 여리디 여린 꽃잎들에게

무슨 말을 드려야 할까.

태초로 돌아가는데도 말이 필요하다면

그 중에 가장 선한 말을 골라

공순하게 바쳐 올리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궁리해도 나는

사랑한다 미안하다

이보다 선한 말 찾을 수 없다.

어떤 말이 더 필요하랴.

이 통절함 담을 말 어찌 있으랴.

새벽까지 뒤척이다 마당에 나와

팽목항 향해 나직나직 읊조린다.

사랑한다 미안하다

미안하다 사랑한다

동트기 전 대지에다 속삭인다.

얼마나 하찮은지 뻔히 알면서도

웅얼웅얼 여기저기 심는다.

불귀의 영혼들아, 사랑한다

내 속삭임 듣고 싹 틔워라, 빌면서

거듭거듭 단단하게 심는다.

이제는 기다리지 말아라.

너는 이제 자유다, 아이들아.

그러니 가만히 따르지 말고

다시 태어나라, 아이들아.

다시 돌아와 온전히 네 나라를 살아라.

너희가 꿈꾸던 그 나라를 살아라.

사랑한다, 아이들아.

내 새깽이들아.

 

- 가만히 있지 말아라 / 정우영

 

 

 

무위사는 참 많이 변했다. 하긴 20년의 세월 동안 그대로이길 바라는 건 내 욕심이겠지. 가람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걸 어찌 말리겠는가. 아쉬움 가득 안고 돌아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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