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어서 빛으로 일어나 / 이해인

샌. 2022. 4. 19. 07:03

주님 일어나십시오

돌무덤에 갇혀 있던 어둠을 밀어내고

어서 빛으로 일어나 우리에게 오십시오

 

죽음의 깊은 잠을 떨치고 일어나신

당신의 기침소리에 온 우주는 춤추기 시작하고

우리는 비로소 나태의 깊은 잠에서 깨어납니다

 

죽음보다 강한 사랑의 힘으로

온 인류를 일으켜 세우신 그리스도여

죄를 뉘우쳐 눈이 맑아진 기쁨으로

오늘은 부활하신 당신의

흰 옷자락을 붙들고 산을 넘고 싶습니다

 

절망의 벼랑 끝에서도 끝내는 아름답게 피워 올린

자목련 빛 사랑을 드리고 싶습니다

 

감추어 둔 향기를 아낌없이 쏟아내는

4월의 꽃나무들처럼 기쁨을 쏟아내며

우리는 모두 부활하신 당신을 닮고 싶습니다

날마다 새롭게 생명의 수액을 뿜어올리는

생명나무이고 싶습니다

 

어서 빛으로 일어나 우리에게 오십시오

 

- 어서 빛으로 일어나 / 이해인

 

 

그저께 일요일이 부활절이었다. 아내는 성삼일 전례에 매일 참여했다. 성삼일의 마지막은 파스카 성야(聖夜)다. 이때는 어둠을 밝히는 빛의 상징인 부활초를 들고 미사를 드린다. 신자에게 있어 부활절은 최대의 축일이면서 새로 태어나는 의미를 담은 뜻 깊은 날이다.

 

냉담자가 되어서 몇 년째 부활절을 멀리서 바라보지만, 예수의 부활이 인간에게 전해주는 신비한 메시지는 언제나 묵직하게 다가온다. 기독교 신자란 '스승 예수'의 길을 따라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이다. 그분의 부활은 2천 년 전의 사건이 아니라, 지금 이 자리에서 내 자신의 거듭남으로 재현될 때 의미가 있다. 이 시처럼 다른 누구도 아닌 내 자신이 빛으로 일어나야 하지 않겠는가. 먼저 빛으로 일어나서 빛이 되어 우리에게 오신 그리스도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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