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버릇 / 박성우

샌. 2022. 3. 31. 10:20

눈깔사탕 빨아먹다 흘릴 때면 주위부터 두리번거렸습니다 물론, 지켜보는 사람 없으면 혀끝으로 대충 닦아 입 속에 다시 넣었구요

 

그 촌뜨기인 제가 출세하여 호텔 커피숍에서 첨으로 선을 봤더랬습니다 제목도 야릇한 첼로 음악을 신청할 줄 아는 우아한 숙녀와 말이에요 그런데 제가 그만 손등에 커피를 흘리고 말았습니다 손이 무지하게 떨렸거든요

 

그녀가 얼른 내민 냅킨이 코앞까지 왔지만서도 그보다 빠른 것은 제 혓바닥이었습니다

 

- 버릇 / 박성우

 

 

위층에 사는 올빼미 덕분에 깜짝 놀라며 잠이 깼다. 자정이 갓 넘은 시간이었다. 이렇게 되면 잠잠해지는 2시까지는 쉬이 잠들지 못한다. 라디오를 틀었더니 진행자가 이 시를 소개해 주었다. 그래, 이런 재미있는 시를 만났으니 오늘밤은 올빼미도 용서해주마.

 

궁금한 건 첼로 아가씨의 반응이다. 촌스럽다고 외면했을까, 아니면 순박하다고 호감을 가지게 되었을까. 제발 후자였기를 빌어본다. 그래야 조금은 사람 사는 맛이 나는 세상이니까.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이 있다. 고쳐야 할 버릇도 있지만, 이렇듯 평생 간직해도 괜찮은 귀여운 버릇도 있다.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 시인의 고운 마음결이 느껴지는 귀여운 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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