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그렇게 소중했던가 / 이성복

샌. 2022. 5. 11. 19:10

버스가 지리산 휴게소에서 십 분간 쉴 때, 흘러간 뽕짝 들으며 가판대 도색 잡지나 뒤적이다가, 자판기 커피 뽑아 한 모금 마시는데 버스가 떠나고 있었다. 종이컵 커피가 출렁거려 불에 데인 듯 뜨거워도, 한사코 버스를 세워야겠다는 생각밖에 없었다. 가쁜 숨 몰아쉬며 자리에 앉으니, 회청색 여름 양복은 온통 커피 얼룩, 화끈거리는 손등 손바닥으로 쓸며, 바닥에 남은 커피 입안에 털어 넣었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했던가. 꿈 깨기 전에는 꿈이 삶이고, 삶 깨기 전에는 삶은 꿈이다.

 

- 그렇게 소중했던가 / 이성복

 

 

커다란 박에 구멍을 뚫고 안에는 원숭이가 좋아하는 먹이를 넣는다. 손을 박 안으로 집어넣은 욕심 많은 원숭이는 먹이를 놓치지 않으려고 주먹을 펴지 않으니 박에서 손을 빼낼 수가 없다. 남쪽의 어느 나라에서 원숭이를 잡는 방법이라고 한다.

 

목숨이 왔다갔다 하는 정도는 아닐지라도 우리는 살면서 뭣이 중한지 모른 채 인생을 허비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애착과 무지, 어리석음으로 제 삶을 갉아먹는다. 누구의 말대로 인생은 바보들의 넋두리인지 모른다. 해 저물고 꿈을 깰 때가 되어야 우리는 우리는 자탄할 것이다. "그렇게 소중했던가, 그냥 두고 올 생각 왜 못했던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