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샌. 2022. 5. 23. 09:33

섭섭하게,

그러나

아조 섭섭치는 말고

좀 섭섭한 듯만 하게,

 

이별이게,

그러나

아주 영 이별은 말고

어디 내생에서라도

다시 만나기로 하는 이별이게,

 

연꽃

만나러 가는

바람 아니라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 아니라

한두 철 전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 서정주

 

 

시인은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 살라고 한다. 그것도 엊그제 만나고 가는 바람이 아니라, 한두 철 전에 만나고 가는 바람이다. 바람 속에는 연꽃 향기 시들고 섭섭한 마음도 색이 바랜 뒤일 것이다. 무슨 미련이 남아 있겠는가.

 

바람은 돌고 돌아 다시 연꽃밭을 지나갈지 모른다. 전생에서 수없는 만남이 있었음을 바람은 눈치채지 못하리라. 향기를 머금고 다시 먼 길을 떠나는 바람은 조금은 섭섭해서 뒤돌아볼 것이다. 좀 섭섭하고, 좀 아쉽고, 좀 쓸쓸하게, 우리네 인생길이 그렇지 않을까. 연꽃 만나고 가는 바람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