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더 브레인

샌. 2023. 7. 8. 10:52

몇 달 전에 읽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의 여운이 남아 있다. 인간의 정신이나 의식, 무의식의 세계를 뇌과학으로 풀어내는 설명에 끌린다. 심리학자의 분석과는 방법이 다르지만 만나는 지점은 같을 것이다. 아직 뇌에 관한 인간의 지식은 초보 수준이다. 외부 세계의 질서나 작동 원리의 지식에 비해 정작 자신 안에 들어있는 - 어쩌면 세계를 창조하고 있는 - 1.4kg의 두뇌에 대해서는 모르는 것이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이 책 <더 브레인(The Brain)>은 미국 스탠퍼드 대학교의 신경과학과 교수인 데이비드 이글먼이 썼다. 같은 제목의 TV 프로그램 내용을 책으로 펴낸 것이라고 한다. 뇌과학의 입문서로 좋다고 해서 읽어 보았다. 누구나 이해하기 쉽도록 한 친절한 설명과 사례가 돋보였다.

 

내용은 <이토록 뜻밖의 뇌과학>과 공통되는 부분이 많았다. <더 브레인>에서도 인간 뇌의 특징으로 가소성(可塑性, plasticity)을 강조한다. 이 능력 덕분에 인간은 어떤 환경에서도 적응하게 되었다. 인간의 뇌는 동물과 달리 미완성인 채로 시작한다. 다른 동물들은 유전적으로 미리 프로그래밍된 상태로, 곧 특정 본능과 행동을 위해 '고정 배선'된 상태로 태어난다. 인간의 뇌는 다르다. 성장하면서 세계 안에서의 경험으로 배선이 완성되는 '생후 배선'이다. 덕분에 인간 뇌의 배선은 국지적 조건들에 적응하기 쉽다. 출생 이후에 형성된 내부 모형으로 우리는 세계를 인식한다.

 

가소성은 또한 우리 미래를 여는 열쇠가 된다. 이 융통성 때문에 우리 자신의 하드웨어를 수정할 수 있고 감각 경험을 확장하며 기계와의 결합도 가능해진다. 뇌는 자신의 회로를 재구성할 수 있기 때문에 컴퓨터의 단순한 소프트웨어와는 다르다. 이를 '라이브웨어(liveware)'라고 표현한 것도 재미있었다.

 

인간의 뇌는 1조 개나 되는 뉴런이 각각 1만 개의 회선을 가진다고 한다. 어머어마한 연결망이다. 이 방대한 연결 패턴에 우리의 의식과 무의식, 기억이 들어 있다. 새로이 입력되는 무수한 정보에 의해 과거 기억은 재구성된다. 기억의 적은 시간이 아니라 다른 기억들인 셈이다. 그리고 어른이 된다는 것은 연결망이 단순해진다는 뜻이라고 한다. 회로를 가지치기하면서 우리는 커 간다. 살다 보면 하나에 집중하게 되고 다른 가능성은 사라져 버린다.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내 뇌는 특정한 패턴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실재란 무엇일까?'라는 제목의 2장에서는 세계의 참모습이 어떤 것인지 묻는다. 우리의 모든 감각 경험이란 뇌에서 일어나는 활동의 산물에 불과하다 풍부한 색깔과 질감, 소리, 냄새로 가득찬 이 세계가 환상일 뿐이며 뇌가 우리에게 보여주는 쇼일지도 모르지 않는가. 만약 실재를 그 진면목대로 우리가 지각한다면 색깔도 냄새도 맛도 없는 실재의 침묵에 충격을 받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경험하는 모든 것은 직접 경험이 아니라, 뇌라는 캄캄한 극장 안에서 펼쳐지는 전기화학적 연극이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외부 세계를 직접 경험하며 산다고 느끼지만, 우리가 상대하는 실재는 궁극적으로 어둠 속에서, 전기화학적 신호들로 이루어진 낯선 언어로 작성된다. 방대한 신경 연결망들에서 일어나는 활동이 당신의 이야기로, 곧 당신의 사적인 세계 경험으로 변환되는 것이다. 당신이 손에 쥔 이 책의 촉감으로, 방 안의 빛으로, 장미꽃 향기로, 타인들의 목소리로 말이다. 그럼 실재란 무엇일까? 실재란 오직 당신만 볼 수 있고 당신이 꺼버릴 수 없는 텔레비전 쇼와 같다. 다행히 그 쇼는 당신에게 더할 나위 없이 흥미롭다. 그것은 오로지 당신만을 위해 편집되고 제공되는 개인용 방송이다."

 

뇌과학을 깊이 들어가면 양자역학적 세계상과 마주치지 않나 싶다. 부처의 '천상천하유아독존(天上天下唯我獨存)'도 이런 관점에서 바라볼 수 있을 것도 같다. 또한 뇌가 내리는 결정은 의식 세계를 벗어나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가 자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과연 누구인가, 라는 근본적인 물음으로 다시 돌아갈 수밖에 없다. 우리의 삶이 우리의 자각 능력이나 통제 능력을 훨씬 벗어난 힘들에 의해 조종된다면 말이다.

 

책의 마지막 장은 '미래에 우리는 어떤 존재가 될까?'이다. 결어 부분은 이렇다.

 

"확실한 것은 이것 하나뿐이다. 우리 종은 지금 무언가의 출발점에 섰을 뿐이며, 그 무언가가 무엇인지를 지금 우리는 완전하게는 모른다. 지금은 역사에서 전례가 없는 순간이다. 뇌과학과 기술은 지금 함께 진화하는 중이다. 기술과 뇌과학의 접촉점에서 벌어지는 일은 우리의 본성을 바꿔놓을 태세다.

수천 세대에 걸쳐 인류는 똑같은 유형의 생애주기를 되풀이해서 살아왔다. 우리는 태어나고, 연약한 몸을 통제하고, 감각적 실재의 좁은 구역을 누리고, 결국 죽는다.

이 진화의 굴레를 초월한 수단들이 과학에서 나올 가능성이 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자신의 하드웨어를 해킹할 수 있다. 덕분에 우리의 뇌는 타고난 상태에 붙박이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새로운 유형의 감각적 실재와 상호작용하고 새로운 유형의 몸을 가질 수 있다. 언젠가 우리는 우리의 물리적 형상을 완전히 내던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 우리 종은 우리 자신의 운명을 주무를 수단들을 발견하는 중이다.

우리가 누가 될지는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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