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샌. 2023. 7. 30. 10:58

13년 전인 2010년 3월 10일, 고려대학교 교정에 대자보가 하나 붙었다. 제목이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로 경영학과 3학년생이던 김예슬이 쓴 것이다. 이 내용이 언론에 보도되면서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한 대학생의 교육 시스템에 대한 거부 선언이 찬반 논란을 불러왔고, 숨 죽이고 있던 목소리가 분출하는 계기가 되었다. 나도 블로그에 대자보 전문을 옮겼고 공감을 표하며 응원을 했다. 하지만 세상이 변한 것은 없었다. 호수에 생긴 파문은 이내 가라앉아 보였다. 어쩌면 세상을 지배하는 강고한 시스템을 재삼 확인하게 되었는지 모른다.

 

그의 근황이 궁금해 인터넷을 뒤지다가 이 책을 알게 되었다. 김예슬 씨가 선언을 하게 된 배경과 본인의 생각을 정리한 소책자인데 선언을 한 그해에 나왔다. 대자보를 적은 것이 충동적인 선택이 아니라 오랜 기간 삶과 생각으로 숙성된 결과임을 보여준다. 김예슬 씨는 현재 시민단체에서 활동하며 더 나은 세상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다.

 

글을 읽으며 당시와 마찬가지로 공감하는 바가 많았다. 김예슬 씨는 지엽적이 아닌 우리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근본에 대해 문제를 제기한다. 국가와 대학과 시장이 결탁하여 만든 기계 문명과 자본 권력이 인간을 옭아매고 병들게 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대학 거부는 체제의 목소리에 따르지 않겠다는 저항이다. 당연히 그는 사상보다 삶과 실천을 중요시한다.

 

그런 점에서 진보적이라는 지식인도 비판 대상이다. 일상과 긴밀히 연결된 삶의 총체로서의 진보가 보이지 않는다는 뜻이다. 주장은 옳아도 가슴을 울리는 삶의 내용이 없다. 소위 '강남 좌파'라는 말로 대변되는 무리들이다. 정치에서는 권력 쟁취의 수단으로 진보를 이용한다. 김예슬 씨가 보는 진보는 쓸데없이 과격하고, 위험하게 실용주의적이고, 민망하게 투박하고, 어이없이 분열적이고, 놀랍도록 실적 경쟁에 매달린다. 물질적이고 권력정치적이고 비생태적이고 엘리트적이고 남성중심적인 보수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는다. 그는 세상과 인간의 삶을 더 근원적으로 파고 들어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아나가야 한다고 본다. 즉, 더 래디컬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인문학 열풍에 대해서도 인문'학'이 아니라 인문'삶'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가 초지일관 주장하는 것은 바른 생각과 실천이다. 삶으로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그는 이 세상의 부모들에게 다음과 같이 당부한다. 특히 진보적이라는 부모들에게.

 

"제발 자녀를 자유롭게 놓아 주십시오. 당신의 몸을 빌어 왔지만 그는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신성하고 고유한 존재이지 당신의 소유가 아닙니다. 아이를 위해 '좋은 부모'가 되려 하지 말고 당신의 '좋은 삶'을 사십시오. 당신이 하고 싶은 사랑이 진정한 사랑이 아닙니다. 당신께서 끔찍이 아끼고 믿고 잘해준 아이의 내면에 지금 무슨 일이 생겨나고 있는지 아시는지요. 당신은 결코 아이의 내밀한 영혼을, 아이만의 상처와 비밀을, 그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부모 앞에서 태연히 웃고 있는 고뇌를 알 수 없고 알려고 해서도 안 됩니다. 집단적 두려움에 질린 부모들의 두려운 사랑으로 두려움에 가득 찬 아이로 만들어 내지 마십시오. '사랑의 이름'으로 길들이며 자율성의 날개를 꺾어버리지 마십시오. 당신은 결코 아이의 미래를 대신 살아 줄 수 없습니다. 아무리 미래를 예측한다 해도 과거의 체험과 과거의 욕망으로 자신이 설정해 놓은 성공의 길로 몰아대며 단념시키려거나 다른 방향으로 이끌려고 하지 마십시오. 그저 뜨거운 침묵으로 지켜보고 격려해주기만 하면 스스로 저지르고 실패하고 성찰하고 일어서며 자신의 길을 찾아갈 것입니다. 부모님이 해줄 수 있는 최고의 사랑은 서툴지만 자기 생각대로 살고 책임지겠다는 자녀의 저항에 기꺼이 져주는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김예슬 씨는 그럼 대안이 무엇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저항이 대안이다!"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을 직시하며 사실을 사실대로 바라보겠다고 다짐한다.

 

"거짓 희망의 말들에 속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희망을 잃어버린 것은 헛된 희망에 사로잡혀서이기에. '억압 받지 않으면 진리가 아니다. 상처 받지 않으면 사랑이 아니다. 저항하지 않으면 젊음이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기꺼이 억압 받고, 상처 받고, 저항할 것이다. 나는 그 저항의 길을 내가 먼저 걸어갈 것이다. 멈추지 않는 작은 돌멩이의 외침으로!"

 

그가 던진 돌멩이의 파문은 스러지지 않았다. 분명 어디에선가는 제2, 제3의 파문이 생겨나고 있다. 그는 대자보 마지막에 이렇게 적었다. "그래,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 볼 일이다." 김예슬 씨의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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