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읽(18) - 데미안

샌. 2023. 7. 22. 10:05

20대 때 읽은 책을 지금 다시 읽으면 느낌이 어떻게 다를지 늘 궁금하다. 그래서 이 책을 골랐는데 아쉽게도 그때의 느낌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는 걸 책을 읽으며 확인했다. 50년 전이니 기억한다는 게 도리어 이상할지 모른다. 하물며 데미안이 이 소설 주인공 이름인 줄 착각하고 있었다. 주인공은 싱클레어이고 데미안은 그의 멘토며 구원자다. 또는 싱클레어 내면에 있는 영혼의 목소리로 볼 수도 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새는 신에게 날아간다. 신의 이름은 아브락사스다."

 

<데미안>에 나오는 유명한 문장이다. 맞다. <데미안>은 자아를 깨뜨리고 새로운 정신의 세계로 나아가는 소년의 구도기라 할 수 있다. 독립된 인간으로 서려는 청춘의 성장통이다. 이번에 읽으면서 헤세가 말하려는 내용이 니체 철학과 많이 상통한다는 점이 인상 깊었다. 자주 나오는 '카인의 표적을 지닌 사람'은 고정관념을 거부한 주체적인 고독인을 뜻한다. 신(神)에게서도 독립된 인간이다. 또한 소설의 배경이 된 시대도 무시할 수 없다. <데미안>은 제1차 세계대전의 와중인 유럽의 혼동기에 쓰인 책이다. 개인이 개안하기 위해서는 고통이 필연적이듯 사회도 마찬가지다. 헤세가 어떻게 전쟁을 해석하고 시대를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

 

싱클레어는 선과 악의 세계를 구분한 세계에 살았지만 성장하면서 세상의 부조리를 알게 된다. 하나의 세계관이 깨져야 다른 세계가 열린다는 사실을 데미안과의 만남을 통해 인지한다. 여기서 데미안은 모든 인간의 내면에 존재하는 본연의 목소리라 할 수도 있다. 젊은 시절의 방황과 고통은 한 인간으로 서기 위한 절대 조건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한 세계를 깨뜨리는 고통을 감내해야 하는 것이다. 만약 이런 과정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 유아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데미안> 서문의 첫 문장은 이렇다.

 

"난 진정, 내 안에서 솟아나오려는 것, 그것을 살아보려 했다."

 

내 젊은 날을 회상하며 오래 전의 옛 책을 읽었다. 싱클레어는 그 시절 내 모습의 한 단면이었다. 나이가 잔뜩 들어서 다시 <데미안>을 읽으며 싱클레어를 내 삶에 대입해 보는 재미가 있었다. 데미안이 싱클레어에게 하는 말도 새삼 눈에 들어왔다.

 

"다른 관점에서 볼 때 대개 더 나은 가치를 갖게 돼."

"사람은 거북이처럼 자기 자신의 안으로 완전히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거야."

"우리들 마음속에는 모든 것을 알고 모든 것을 원하고 우리들 자신보다 모든 것을 더 잘해 내는 누군가가 들어 있어."

 

헤세는 우리가 직면하는 존재론적 문제들에 대해 치열하게 싸워 나가라고 말한다. 등불은 이미 우리 안에 밝혀져 있다. 자신의 내면에서 울리는 북소리를 외면하지만 않으면 된다. 세상의 고정관념에 순응하는 자는 어른도 아니고 그저 노예일 뿐이다. 싱클레어가 성장해 나가는 과정은 니체의 '위버맨쉬'에 이르기 위한 지난한 분투의 일부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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