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다음 소희

샌. 2023. 7. 24. 10:00

 

소희는 특성화고등학교 3학년 학생이다. 2학기가 되어 어느 통신회사 콜센터에 현장 실습을 나간다. 어린 학생이 감내하기에는 너무 가혹한 근무 환경이 꿈 많은 소녀를 절망하게 만든다. 회사는 실적에 따라 인센티브를 주면서 서로간의 경쟁을 부추긴다. 발버둥을 쳐서 좋은 실적을 올리지만 그나마 실습 학생에게는 보상을 해 주지 않아 마찰이 생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도 위안을 받지 못한 소희는 결국 저수지에 몸을 던진다.

 

'다음 소희'는 6년 전에 전주에서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특성화고등학교 학생의 현장 실습은 여러 차례 문제 제기가 되었지만 변한 것은 없는 것 같다. 안타까운 죽음이 잊을 만하면 일어나곤 한다. 나도 실업계 고등학교에 근무한 적이 있었다. 현장 실습 나간 학생으로부터 작업 환경이 너무 나쁘다는 얘기를 간접적으로 듣곤 했다. 일부 회사에서는 실습 나온 학생을 싼값으로 부려먹는 인력쯤으로 여겼다. 이에 문제의식을 가진 몇몇 교사는 실태 조사를 하고 학교측에 제대로 된 대응을 촉구했지만 마이동풍이었다. 인문계 교사가 실업 영역에 관여하는 것 자체를 싫어했다.

 

영화를 보면서 그때 아이들 심정이 어땠을까를 되돌아본다. 도움은 커녕 학생의 어려움에 고개를 돌렸다. 이 땅의 수많은 소희들에게 미안하고 부끄럽다. 영화를 보며 훔친 눈물은 나 자신에 대한 책망이기도 했다.

 

배두나가 이 사건을 파헤치는 형사로 나온다. 취업률에 목맨 학교와 교사, 실적만이 최고인 회사, 열악한 가정환경 등이 소희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분노한다. 상사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그는 우리 사회의 부조리와 정면 대결한다. 그는 소희와 깊은 정서적 교감을 느끼며 한 소녀를 죽음으로 이끈 현실에 안타까워한다. 그는 소희 담임에게 외친다. "이게 학교예요? 인력 파견소지."

 

나라가 선진국이 되었다고 하지만 밑바탕은 별로 달라진 게 없다. 이 영화가 다룬 고등학생의 현장 실습 여건도 수십 년 전과 비교할 때 나아진 게 없다. 노동의 가치를 귀하게 여기지도 않는다. 우리나라 좋은 나라라고 국뽕에 취하기 전에 소외된 이들에게도 따스한 시선을 줄 수 있어야 한다. 가진 자들이 제발 뻔뻔스럽지 않았으면 좋겠다.

 

소희가 마지막으로 들린 곳은 허름한 가게였다. 거기서 맥주 두 병을 마시고 쓸쓸히 저수지로 향한다. 가게에 있을 때 소희의 맨발에 창문으로 들어온 햇살이 환하게 비친다. 소희는 물끄러미 바라본다. 한 줄기 햇살이 소희의 마음에 따스한 위안이 되었길 빈다. 그 장면을 회상하니 다시 눈물이 그렁그렁해진다. 

 

'읽고본느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삼대  (0) 2023.08.05
오늘 나는 대학을 그만둔다, 아니 거부한다  (0) 2023.07.30
다읽(18) - 데미안  (0) 2023.07.22
노화의 종말  (0) 2023.07.17
킹 오브 클론  (0) 2023.07.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