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H 선배를 추모함

샌. 2023. 11. 15. 12:15

"가장 선한 상인보다는 가장 악한 공무원이 더 선하고, 가장 선한 공무원보다는 가장 악한 교사가 더 선하다."

사범대학에 입학해서 오리엔테이션을 받을 때 어느 교수가 한 말이다. 당시에 너무 의아하게 들린 발언이라 아직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교사를 꿈꾸는 학생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려는 의도는 알겠는데, 비유가 적절하지 않을뿐더러 사실이지도 않다는 것은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생각이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여러 동료 교사들을 만났다. 교사 집단이라고 해서 더 선한 사람들이 모인 곳이 아니다. 교사들이 다른 직업의 사람들보다 더 고상한 목표와 이상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여느 집단과 마찬가지로 존경할 만한 사람이 있고,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사람도 있다. 내가 만난 동료 교사들을 돌아볼 때 서너 명의 존경할 만한 사람이 떠오른다. H 선배도 그중 한 명이다.

 

선배를 만난 것은 21세기에 접어든 즈음의 J 고등학교에 근무할 때였다. 새로 부임해 오신 선배는 처음부터 다른 사람과 달랐다. 지금은 어떤지 모르지만 그때는 전에 같이 근무한 학교의 동료들이 떡을 해 가지고 축하 인사를 하러 왔다. 그래서 학년초만 되면 교무실은 떡잔치가 벌어졌다. 보통 한두 팀이 다녀가는 게 상례였지만, 선배한테는 일주일 내내 쉼 없이 동료 교사들이 찾아왔다. 다른 전입 교사의 눈총을 받을 정도였는데, 그만큼 선생님들의 신망을 받고 있다는 증거였다.

 

교무실에서 보여지는 선배의 모습도 남달랐다. 항상 조용하면서 단정했고 수업이 끝나면 자리에 앉아 책을 읽거나 교재 연구를 주로 했다. 모여서 잡담을 하거나 시시껄렁한 농담으로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 학생과 일대일로 면담을 하는 모습도 자주 봤다. 비슷한 나이또래보다는 주로 후배 교사들이 선배를 좋아하면서 따랐다. 바른 교사의 길을 가고 있는 선배라고 모두가 인정했기 때문이다. 일과가 끝나면 젊은 교사들과의 술자리가 심심찮게 있었다. 공자가 말한 '화이부동(和而不同)'을 선배는 보여주었다.

 

그때는 이해찬 교육부장관이 부임하면서 교육 개혁이 화두가 되고 교사 정년 단축 문제로 교육계가 시끄러웠다. 선배도 여러 원로 교사들과 함께 시대의 물결에 휩쓸려 퇴직을 해야 했다. 나로서는 아쉽게도 선배와 딱 한 해만 같이 근무했다. 잠깐을 만나도 깊은 인상을 남기는 사람이 있고, 수십 년을 알고 지내도 스쳐 지나가는 정도일 뿐인 사람도 있다. 선배는 전자에 속했다. 특별히 가까운 관계는 아니었지만 멀리서 지켜보는 느낌만으로도 가르침을 주는 분이었다.

 

선배가 한 말 중에 기쁘고 뿌듯했던 한 마디가 있다. 언젠가 선배는 지나가는 말로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O선생을 보면 과거의 나를 보는 것 같아." 어떤 의미였는지 설명하지는 않았지만 나는 나름대로 좋게 해석하며 반색했다. 선배의 삶 중에서 한 단면이 나에게서 읽힌 게 아닐까,라고 짐작한다. 감히 선배를 닮았다는 말을 하지를 못하겠다.

 

젊었을 때 선배가 어떻게 살았는지는 풍문으로 들었지만 전설처럼 들리는 일화들이 여럿 있다. 공통적으로는 참교육의 길을 고민하며 행동으로 보여줬다는 것이었다. 불의를 용납하지 않았고 자신이 불이익을 받더라도 교사들의 앞장을 서서 당국과 싸웠다. 내가 근무할 때 본 선배의 온화한 모습과는 달랐다. 선배는 잘 베풀면서 늘 솔선수범을 했다. 모임이 있으면 경비를 먼저 지불하는 통에 후배들의 원성을 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러면서 본인은 비행기를 한 번도 타보지 못했다고 해서 놀란 적이 있었다. 환갑이 되도록 제주도조차 가보지 못했다고 했다. 물론 운전도 할 줄 모르고 자가용도 없었다. 당신은 검소한 삶을 살면서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일에는 마다 하지 않았다.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가난한 학생들도 다수 지원해 준 것으로 알고 있다.

 

선배는 교직에서 은퇴한 뒤 2년 동안 백두대간을 걸을 정도로 산을 좋아했다. 8년 쯤 전 여름이었는데 선배와 둘이서 백마산을 등산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치명적인 실수를 하고 말았다. 외대 용인캠퍼스로 내려와 늦은 점심을 먹으면서 마신 반주가 과했다. 같이 버스를 타고 오다가 몽롱한 상태에서 그만 버스 바닥에 구토를 하고 만 것이다. 버스 안은 난리가 났다. 승객이 모두 내리고 버스는 결국 운행을 하지 못했다. 그 뒤치다꺼리를 선배가 맡아야 했다. 오랫동안 나는 낯을 들지 못했다.

 

5년쯤 전부터는 소문으로만 선배의 근황을 들었지 만나뵙지는 못했다. 그러다가 2년 전에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걱정만 했을 뿐 차일피일 미루다 병문안은 가지 못했다. 병세가 잠시 회복되었지만 상태가 안 좋아지고 있다는 걸 지인의 전언으로 알고 있었다.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대화도 불가능했다. 사모님도 오랜 기간 요양병원에 계신 상태다. 얼마 전에 선배의 부음이 왔다. 선배와의 이런저런 추억이 떠오르면서 올곧게 살아가려고 애쓴 한 인간의 모습에 고개를 숙인다. 선배님, 이런저런 시름 없을 저 나라에서 영면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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