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전보가 사라진다

샌. 2023. 12. 4. 10:43

전보가 도입된 지 138년 만에 곧 서비스를 중단한다는 보도를 봤다. 옛 시대의 상징이 또 하나 사라지는 것이다. 전보는 1885년 서울과 인천 사이에 전신 시설이 개통되면서 우리나라에 처음 선을 보였다. 사실 '전보(電報)'라는 말은 오랜만에 들었다. 길거리에서 공중전화박스를 만나는 야릇한 느낌이랄까, "아직 전보가 있었나?"라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돌아보면 1970년대 중반까지는 전보를 자주 이용했다. 가정에 전화가 보급되기 전이었으니 연락 수단은 편지나 전보였다. 급한 연락을 하자면 전보밖에 없었다. 우체국에 가서 보낼 말을 적어주면 당일로 전달이 되었다. 글자 수에 따라 요금이 정해지니 문장은 가능한 한 짧게 압축해야 했다. 고등학생 때는 고향집에서 보낸 "어머니상경 5시청량리역" 같은 전보를 자주 받았다. 역으로 마중을 나오라는 통보였다. 그 시절에 전보는 부고나 위급한 상황을 알리는 데 위력을 발휘했다.

 

들떠서 전보를 쳤던 기억 하나가 선명하다. 1971년 1월이었다. 대학 합격자 발표를 보고는 가까운 우체국으로 달려가서 고향으로 전보를 보냈다. "합격"이라는 두 글자였다. 전보를 받고 기뻐하실 부모님을 생각하니 기쁨은 배가되었다. 그때는 세상이 온통 내 것 같았다.

 

우리 집에 전화기가 들어온 건 1970년대 중반이었다. 그뒤로는 집으로 전보를 칠 일이 거의 없었다. 편지도 마찬가지였다. 유선전화의 보급은 지금의 스마트폰만큼이나 세상을 크게 바꾸었다. 초연결사회로 나아가는 징검다리 역할을 전화는 한 셈이었다. 이제는 이메일, 카톡 등 다양한 SNS가 세계인을 하나로 묶고 있다. 우리 세대라면 동전을 손에 들고 공중전화박스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던 추억을 누구나 갖고 있을 것이다.

 

전화 통화를 처음 해 본 때의 기억도 선명히 떠오른다. 중학생 때 친구 중에 교장선생님의 아들이 있었다. 그 집에 놀러가면 응접실 탁자 위에 까만색의 전화기가 놓여 있었다. 어느 날 친구가 통화를 한 번 해 보라며 다른 친구한테 전화를 걸어주었다. 귀에 닿는 차가운 느낌의 수화기로 들려오는 소리가 너무 생경하고 신기해서 촌뜨기는 제대로 대꾸도 못했다. 누구나 전화기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시대가 오리라고 소년은 상상이나 할 수 있었을까. 더구나 사진기, 라디오, TV, 영화, 책, 신문 등이 쬐끄만 기계 안에 다 들어 있다.

 

전보 서비스의 종료는 당연한 결과라 아쉬워 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제까지 존속하고 있었다는 사실이 대단하다 아니할 수 없다. 하지만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고 하니 왠지 서운하다. 잊고 있어서 미안했다고 전해주고 싶다. 퇴물이 되어 밀려나고 잊혀지는 게 전보만이겠는가. 사라지더라도 누군가에게는 따스한 추억으로 남아있다는 사실이 작은 위안이라도 될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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