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견리망의(見利忘義)

샌. 2023. 12. 17. 18:13

'교수신문'에서는 연말이면 올해의 사자성어를 선정한다. 올해 사자성어는 견리망의(見利忘義)다. '이로움을 보자 의로움을 잊는다'/'의로움을 잊고 이익만 챙긴다'는 뜻으로, 전국 교수 1,300여 명이 뽑았다. 안중근 의사의 붓글씨로 유명한 '견리사의(見利思義)'를 뒤집어서 만든 말인 것 같다.

 

우리 사회의 가장 큰 병폐를 들라면 극심한 이기주의가 아닐까 한다. 옛날이라고 인간성이 달랐을 것 같지 않지만, 그래도 겉으로는 의로움을 명분으로 내세웠다. 이제는 다들 철면피가 되고 뻔뻔해졌다. 도시와 시골, 잘 사는 이나 못 사는 이나 차이가 없다. 세상은 약육강식의 정글이 되었고, 각자도생의 싸움판이 되었다.

 

견리망의가 극명하게 드러나는 곳이 정치판이다. 자신이나 정파의 이익을 위해서는 의로움 따위는 헌신짝만도 못한 취급을 받는다. 내년 봄의 총선을 앞두고 공천을 받기 위해 이전투구를 벌이는 모습이 가관이다. 그런 인물들이 당선되고 권력을 쥐게 되면 국가를 위해 일할 것이라고 기대할 수 없다. 오로지 자기 이익을 위해 불의에도 과감히 눈을 감을 것이다. 정치만 아니다.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나만 잘 살면 된다'는 이기적인 의식이 팽배해 있다.

 

어느 작가의 소년 시절 회고담을 읽은 적이 있다. 친구와 집에서 놀다가 식사 때가 되었다. 어머니가 차려준 밥상에는 아침에 먹었던 소고기국이 없어서 의아하게 생각했다고 한다. 식사를 마치고 친구가 먼저 밖으로 나갔는데 어머니가 부엌으로 부르더란다. 그리고 소고깃국을 마시고 나가라고 몰래 퍼주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귀한 소고깃국을 자식에게만 먹이고 싶어 했던 것이다. 어머니의 마음이 이해는 되면서도 못마땅했고, 친구에게 미안했던 심정을 작가는 적었다. 어머니는 하나만 알고 둘은 몰랐던 것이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이러하다면 내 자식이 남의 집에 갔을 때 같은 대우를 받을 것이 아닌가. 내 눈앞의 이익만 탐하는 것이 공동체를 파괴하고 결국은 나에게도 손해를 끼치는 것은 자명하다.

 

부동산 기사를 보면 '영끌'이라는 단어가 심심찮게 보인다. '영혼까지 끌어모은다'는 뜻으로 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무슨 수단이라도 동원한다는 의미다. '영끌'은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모순은 외면한다. 오직 각자도생의 이전투구만 있다. 한정된 판에 다수가 몰리면 부동산 값이 폭등하고 결국은 모두가 피해자가 된다. '너 죽고 나 살자'라는 생존의 처절한 몸부림은 사악한 자본주의의 먹잇감만 될 뿐이다. 견리망의의 예는 부지기수로 많다.

 

인간은 원래가 이기적이다. 제어가 안 되면 탐욕은 끝 간 데를 모르고 뻗어간다. 인간의 어리석음은 제 동족의 착취를 넘어 지구 환경을 파괴하는데도 한 치의 거리낌이 없다. 당장의 풍요와 안락만을 최고로 여긴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노라면 마음이 어둡고 착잡해진다.

 

나라의 유익을 구하려는 양혜왕에게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왕께서는 하필이면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가 있을 뿐입니다[王何必曰利 亦有仁義而已矣]."

이어지는 맹자의 말은 이러하다.

"왕께서 이로움만 찾으신다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이 이로울까' 할 것이며, 백성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에 이로울까' 할 것이니,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익만을 취하게 되어 나라가 위태로워질 것입니다."

 

세상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늘 견리망의의 해였으리라. 비록 소수지만 견리사의하는 정신이 살아있기에 세상은 이렇게라도 존재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어느 시대에나 목에 칼이 들어와도 대의(大義)를 지키려는 고귀한 정신이 있었다. 2023년의 사자성어인 견리망의(見利忘義)를 보면서 언 땅 속에서 다가오는 봄을 기다리는 새 움 같은 견리사의(見利思義)를 생각한다. 그것은 인간 세상을 지켜내는 최소한의 염치며 양심이 아닐까.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블로그 20년  (4) 2023.12.31
이웃을 잘 만나는 복  (0) 2023.12.28
전보가 사라진다  (0) 2023.12.04
영정사진과 장수사진  (0) 2023.11.25
H 선배를 추모함  (0) 2023.11.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