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이웃을 잘 만나는 복

샌. 2023. 12. 28. 10:59

예부터 바람직한 인생을 위해서는 오복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민간에서 전해지는 오복(五福)이란 건강한 치아, 부부의 백년해로, 많은 자손, 풍족한 재산, 명당에 묻히는 것 등이다. 현대의 기준으로는 빼도 괜찮은 것도 있다. 예를 들면 치아는 치과에 가면 새것처럼 만들어 준다. 크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명당에 묻혀야 한다고 풍수지리를 신봉하는 현대인은 없다(대통령병에 걸린 몇몇을 제외하고).

 

현대를 살아가는 나는 '이웃을 잘 만나는 복'을 오복에 포함시키고 싶다. 우리나라는 아파트 등 공동주택의 거주 비율이 80%가 넘는다. 많은 사람들이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웃과  살아간다. 너무 밀집하여 살면 마찰이 생기기 마련이다. 대표적인 게 층간소음이다. 막무가내인 이웃을 만나면 해결책이 없다. 현대에서 삶의 질을 결정하는 것은 어떤 이웃을 만나느냐에 달려 있다.

 

나 역시 아파트 생활을 40년 넘게 하면서 반 이상은 층간소음으로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할 수 있다. 받기만 했겠는가, 우리 아이들을 키우면서 이웃에게 스트레스를 주기도 했을 것이다. 대부분이 그러려니 하며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견디기 힘들 정도로 심한 경우도 있다. 오죽하면 이웃간에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법정으로 가기도 하겠는가. 이웃을 잘 만나는 것만큼 큰 복도 없을 것이다.

 

이웃을 잘 만나야 한다는 것은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구를 만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과 같다. 평생의 반려자로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내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는 중요한 변수다. 친구나 직장 동료, 스승 등도 마찬가지다. 은인을 만나기도 하지만 원수를 만나기도 한다. 세상에는 다양한 스펙트럼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선한 사람도 있지만 남을 이용해 먹으려는 악한 사람도 많다. 타인이야 어떻게 되든 말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철면피도 부지기수다.

 

인생의 8할은 운(運)이라고 한다. 또한 운의 대부분은 사람과의 만남이 결정한다. 사람을 잘 만나서 가는 길이 순탄하기도 하고, 사람을 잘 못 만나 엉킨 실타래가 되기도 한다. 불교에서는 내가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는 전생의 업에 의해 결정된다고 한다. 이 세상은 인연의 고리를 따라 순환하며 끝없이 오고가는 것이다. 그런 논리라면 어떤 이웃을 만나느냐는 나와 무관할 수 없다. 그 깊은 비밀을 해득할 수는 없지만 관계가 내 의지 작용의 범위 밖이라면 운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며칠 전 성탄절 새벽에 서울에 있는 아파트에서 화재가 발생해 이웃 사람이 죽고 다치는 안타까운 사고가 일어났다. 바로 윗층에서는 어린 자녀를 안고 뛰어내린 부모가 변을 당했다. 졸지에 한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말았다. 인생길이란 게 지뢰밭을 걸어가는 느낌이 날 정도로 두렵다. 한 치 앞도 알 수 없는 게 인생이 아닌가. 안갯속을 허우적대며 가는 길에서 어떤 이웃,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가 인생의 전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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