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말 없고 수줍은 아이

샌. 2024. 1. 10. 12:55

집에 손주가 찾아오면 조용하던 집안이 시끌벅적해진다. 뛰어다니고 재잘거리고 잠시도 가만있지 않는다. 뭐가 그리 재미있는지 연신 깔깔댄다. 손주를 지켜볼 때면 항상 드는 생각이 있다. 저 나이일 때 나는 어떤 아이였을까?

 

요사이 같으면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어 남기지만 그때는 카메라가 너무 귀한 물건이었다. 내 10살 이전의 사진은 딱 한 장이 있을 뿐이다. 어린 시절을 유추할 기록이 없으니 오로지 희미한 몇 개의 기억에 의지할 수밖에 없다.

 

에피소드 하나. 여섯 살 무렵이었으리라. 할머니를 따라 오일장에 간 날이었다. 할머니는 머리에 이고 간 곡식을 팔고 필요한 물건을 샀다. 빗자루도 그중 하나였다. 그런데 값만 치르고 빗자루는 가게에 두고 오는 것이었다. 그런 할머니가 이상했지만 나는 말을 하지 못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내 머릿속은 빗자루 생각뿐이었다. 이미 타이밍을 놓쳤지만 그래도 알려줘야 하나, 아니면 계속 모른 척할까, 뭐 이런 고민이 아니었을까. 결국은 집에 가까이 와서야 힘들게 말을 꺼냈다. 깜짝 놀란 할머니는 부리나케 되돌아가서 빗자루를 찾아왔다. 한 시간 가까이나 헛걸음을 한 셈이었다. 왜 일찍 말하지 않았느냐고 식구들한테 핀잔과 놀림을 들었다.

 

에피소드 둘. 국민학교 입학식 날이었다. 운동장에서 줄을 서 있는데 오줌이 마려워 왔다. 아마 긴장했기 때문이었으리라. 하지만 꼼짝도 못하고 눈물만 흘리고 있었다. 안절부절못하는 내 모습을 본 어머니가 달려와서야 위기를 모면할 수 있었다. 어머니가 아니었다면 바지에 오줌을 싼 채 놀림감이 되었을 것이다. 이런 아이가 과연 학교에 다닐 수 있을지 부모님은 걱정을 많이 했다고 한다.

 

나는 말 없고 수줍은 아이였다. 내성적이고 소극적인 성격으로 남 앞에 나서지 못했다. 급장을 시키기 위해 애를 쓴 담임선생님이 계셨지만 작고 유약한 아이가 그 역할을 해낼 수는 없었다. 어릴 때나 지금이나 리더십은 완전 빵점이었다. 선생님이나 부모님이나 오죽 답답했을까 싶다.

 

아버지도 나의 이런 성향을 파악하셨던지 자식에 대한 바람이 크지 않았다. 생활기록부에 있는 부모의 장래 희망란에는 줄곧 교사라 적혀 있다. 꿈은 크게 가지랬다고 의사나 판사를 목표로 할 수도 있었다. 교수도 아닌 교사였으니 아버지는 나에게 기대하는 바가 적었다. 그렇다고 교사가 내 적성에 맞는 직업도 아니었다. 말로 사람을 상대하는 일이 워낙 서툴렀기 때문이다.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반면에 교직은 경쟁이 덜한 편이라 나에게 맞는 측면도 있었다. 교장이 되려는 욕심만 안 낸다면 상사에 대한 눈치도 안 살피고 압박도 적은 그런대로 괜찮은 직업이었다.

 

말 없고 수줍어하며 혼자 있는 걸 좋아하는 특성은 타고난 천성임이 분명하다. 일흔이 넘은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으니 말이다. 오히려 더 심화된 측면도 있다. 사회생활을 할 때는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사람들과의 교류가 그다지 필요하지 않다. 편한 쪽을 찾다 보니 혼자서 보내는 시간이 점점 많아진다. 모임에 나가는 게 귀찮아지면서 사람들과 만난들 그다지 즐거움이 없다. 어떤 때는 더 외로움을 느낀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정답은 없지 않은가. 각자 자신의 성품대로 마음 편하게 살면 최고라고 생각한다.

 

활달한 달변가가 부러웠다. 뭐든 적극적으로 앞장 서면서 자신에 찬 당당한 모습을 보면 저절로 위축이 되었다. 하지만 이젠 안다. 그들도 겉모습과는 달리 자기 나름의 고민을 갖고 사는 사람들이다. 쉽게 사는 인생이 어디 있겠는가. 이것저것 걸쳐놓은 게 많을수록 번민거리도 늘어나는 법이다.

 

사람은 달라지지 않는다. 언젠가 목회를 하는 분의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목회 초기에는 자신이 맡은 신도들을 성화(聖化)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으로 충만했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포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랫동안 사람들을 대하면서 얻게 된 확신이 '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면서 착잡해 했다. 심지어는 믿음과도 관계없다. 기독교 교리와는 어긋날지 몰라도 어쨌든 성화에 대한 짐을 내려놓으니 목회 일이 가벼워졌다고 말했다. 우리들 모두는 하늘로부터 받은 성품의 몫대로 산다. 이러이러하게 변해야 한다고 나를 닦달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나는 그대로면서 상대가 달라지기를 기대하다가 실망을 하기도 한다. 이 모두가 대책 없이 인생을 피곤하게 할 뿐이다.

 

방문 너머에서 손주의 웃음소리가 들린다. 제 어미와 숨바꼭질을 하느라 호흡이 가쁠 정도로 즐겁다. 손주와 나 사이에 가로놓인 긴 세월의 격차가 아득하게 느껴진다. 나는 저 만했을 때 어떤 아이였을까. 손주를 매개로 옛날의 사랑스런 나를 만나보는 시간이 이제는 달콤하다.

 

'길위의단상'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앓던 이가 빠지다  (0) 2024.02.13
앙코르와트의 옛 모습  (0) 2024.01.28
블로그 20년  (4) 2023.12.31
이웃을 잘 만나는 복  (0) 2023.12.28
견리망의(見利忘義)  (0) 2023.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