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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체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흥미롭게 본 SF 8부작 드라마다. 초반에 나오는 1960년대의 중국 문화대혁명 묘사가 압도적이어서 전체를 볼 수 있도록 이끄는 힘이 되었다. 칭화대 물리학 교수가 상대성이론을 가르쳤다는 이유로 인민재판을 받고 처형되는 장면인데 끔찍했다.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지켜본 딸이 결국은 지구의 운명을 결정하는 선택을 하게 된다. '삼체(三體, 3 Body Problem)'란 지구에서 4광년 떨어진 곳에 있는 항성이 셋인 시스템을 뜻한다. 이곳에서 문명을 발전시킨 삼체인은 더 나은 환경을 찾아 지구로 향한다. 드라마에 보여진 것으로는 엄청난 기술을 가진 초고도 문명이다. 특히 양성자를 펼쳐 만든 '지자(智者, Sophon)'로 지구를 감시하고 통제하는 설정은 압권이다. 하지만 그들이 지구까..

읽고본느낌 2024.03.26

다시 꿋꿋이 살아가는 법 / 박노해

일단 꼬박꼬박 밥 먹고 힘내기 깨끗이 차려 입고 자주 웃기 슬프면 참지 말고 실컷 울기 햇살 좋은 나무 사이로 많이 걷기 고요에 잠겨 묵직한 책을 읽기 좋은 벗들과 좋은 말을 나누기 곧은 걸음으로 다시 새 길을 나서기 - 다시 꿋꿋이 살아가는 법 / 박노해 너무 당연한 말이지만 인생살이는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 골인 지점의 테이프를 제일 먼저 끊고 싶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하지만 승자는 한 명이고 나머지는 들러리다. 허겁지겁 달리다 보면 넘어지고 깨져서 상처가 아물 틈이 없다. 그 와중에 "세상은 일등만 기억합니다"라는 잔인한 문구를 광고로 쓴 기업도 있었다. '다시 꿋꿋이'란 어떤 의미인지 생각해 본다. 세상의 북소리에 맞춰 달음박질을 계속하라는 뜻은 아닐 것이다. 질주하는 무리에서 벗어나 ..

시읽는기쁨 2024.03.25

사기[15-2]

풍환이 말했다. "살아 있는 것이 반드시 죽게 되는 것은 만물의 필연적인 결과입니다. 부유하고 귀하면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고, 가난하고 지위가 낮으면 벗이 적어지는 것은 일의 당연한 이치입니다. 당신은 혹시 아침 일찍 시장으로 가는 사람들을 본 적이 없습니까? 새벽에는 어깨를 맞대면서 앞다투어 문으로 들어가지만 날이 저물고 나서 시장을 지나는 사람들은 팔을 휘저으면서 시장은 돌아보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아침을 좋아하고 날이 저무는 것을 싫어해서가 아닙니다. 날이 저물면 마음속으로 생각했던 물건이 시장 안에 없기 때문입니다. 이제 당신이 지위를 잃자 빈객이 모두 떠나가 버렸다고 해서 선비들을 원망하여 일부러 빈객들이 오는 길을 끊을 필요는 없습니다. 당신은 예전과 마찬가지로 빈객들을 대우하십시오." 맹상군..

삶의나침반 2024.03.23

포스트 트루스

우리 시대를 특징하는 단어 중 하나에 '탈진실[post-truth]'이 있다. 2016년에는 '옥스퍼드 영어사전'에서 올해의 단어로 ' post-truth'를 선정하기도 했다. 2016년은 트럼프가 등장하고 당선된 해다. 트럼프가 선거 운동 중에 한 발언의 70%가 가짜였다는 보고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트럼프는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제는 미국만의 현상도 아니다. 가짜 뉴스에 휘둘리는 세상을 보면서 누구나 묻지 않을 수 없다. "진실은 죽었는가?" 는 미국의 철학자인 리 매킨타이어가 쓴 책이다. 정치적 상황을 중심으로 탈진실의 배경과 원인, 그리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를 논한다. 지은이는 타깃은 주로 트럼프와 공화당이다. 그쪽이 일방적으로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믿는 것 같다. '탈진실'의 점잖은 정..

읽고본느낌 2024.03.22

가천대에서 이매까지 걷다

성남에 있는 가천대학교에서 사진전을 구경하고 탄천으로 나가 이매까지 걸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편하게 자가용으로 다녀오려 했으나, 오늘 아침에 일어나니 봄날씨가 좋아 탄천을 걸어보기로 마음을 바꾸었다. 이런 유혹에는 모른 척 넘어가주는 게 심신에 유익한 법이다. 가천대학교 캠퍼스는 처음 들어가 보았다. 오가는 20대의 청춘들이 봄(spring)처럼 밝고 싱그러웠다. 캠퍼스의 중앙에 자리잡고 있는 이 조형물은 가천대의 상징인 것 같다. 바다 사진을 찍는 김정식 작가의 사진전이었다. '파도 소리'라는 대형 작품 앞에 오늘 만난 셋이 섰다. 사진들은 전체적으로 강렬한 색감이 인상적이었다. 요사이는 AI가 사진만 아니라 영상도 만들어 준다. 상황만 제시해 주면 그에 맞는 분위기의 그림을 알아서 생산한다. 앞으로 ..

사진속일상 2024.03.21

인생은 독고다이

"여러분, 인생은 혼자입니다. 마음 가는대로 사십시오. 여러분을 누구보다 아끼고 올바른 길로 인도하는 건 여러분 자신이고, 누구의 말보다 귀담아 들어야 하는 건 여러분 자신의 마음의 소리입니다. 웬만하면 아무도 믿지 마세요. 누군가 멋진 말로 나를 이끌어주길, 나에게 깨달음을 주길, 내 삶이 더 수월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버리세요. 그런 사람들 무리의 먹잇감이 되지 마세요. '인생 독고다이다' 생각하고 쭉 가세요." 지난달에 이효리 씨가 국민대 졸업식에 참석해 후배들에게 전한 인생 조언이다. '독고다이'라는 표현에 거부감을 나타내는 사람도 있었지만, 그의 성격대로 직설적이면서 소탈한 화법이 인상적이었다. 내용에 대해서는 나도 공감한다. 사회로 진출하는 젊은 후배들을 위한 연설이었지만 7학년인 나는 내 식..

참살이의꿈 2024.03.20

뒷산에 스며드는 봄

봄이 가까이 다가왔다. 스며드는 봄기운을 느끼려고 뒷산에 올랐다. 두꺼운 점퍼를 벗고 가벼운 바람막이 옷을 입어도 될 정도가 되었다. 따스한 햇살이 얼굴을 간질이고 바람은 땀을 식혀주기에 적당했다. 어느 해나 그러하듯이 뒷산의 봄은 생강나무꽃이 제일 먼저 보여준다. 진즉에 피었을 것이지만 당분간은 진노랑 색깔을 뽐내며 봄의 도래를 알릴 것이다. 꽃에 코를 대니 고운 향기가 몸 안으로 들어온다. 흰털괭이눈도 수줍게 꽃을 피웠다. 얘는 해가 갈수록 개체수가 줄어들어 안타깝다. 어린 솔잎도 새 봄을 맞아 윤기로 반들거린다. 지금은 키가 두 뼘 정도 되지만 올해가 지나면 훌쩍 커 있을 것이다. 보이지는 않지만 박새의 지저귀는 소리도 연신 따라온다. 시각, 청각, 후각, 촉각으로 뒷산에 찾아온 봄을 느껴본다. 봄..

사진속일상 2024.03.18

호승심

2023-2024 당구 시즌을 마감하는 월드 챔피언십 결승이 어제 끝났다. 남녀부 우승자는 조재호와 김가영 선수였다. 당구를 잘 치지는 못하지만 선수들 경기를 구경하는 것은 좋아한다. 대리만족이라고 할까, 승부를 벌이는 선수들의 긴장된 모습과 호흡에서 짜릿함을 느끼기 때문이다. 잘 쓰이지는 않지만 호승심(好勝心)이라는 말이 있다. 승부욕과 비슷한 말로 '반드시 이기려는 마음'을 뜻한다. 승부사라면 당연히 가져야 할 마인드다. 아마추어라면 져도 그만 이겨도 그만이지만 프로의 세계는 다르다. 호승심이 없다면 프로의 자격이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게 자신을 응원하는 팬에 대한 프로의 사명이기도 하다. 승부를 가려야 할 때 이기려는 마음은 인간에게 내재된 욕망이다. 친..

길위의단상 2024.03.18

딸년을 안고 / 김사인

한 살배기 딸년을 꼭 안아보면 술이 번쩍 깬다 그 가벼운 몸이 우주의 무게인 듯 엄숙하고 슬퍼진다 이 목숨 하나 건지자고 하늘이 날 세상에 냈나 싶다. 사지육신 주시고 밥도 벌게 하는가 싶다. 사람의 애비 된 자 어느 누구 안 그러리. 그런데 소문에는 단추 하나로 이 목숨들 단숨에 녹게 돼 있다고도 하고 미친 세월 끝없을 거라고도 하고 하여, 한 가지 부탁한다 칼 쥔 자들아. 오늘 하루 일찍 돌아가 입을 반쯤 벌리고 잠든 너희 새끼들 그 바알간 귓밥 한번 들여다보아라. 귀 뒤로 어리는 황홀한 실핏줄들 한 번만 들여다보아라. 부탁한다. - 딸년을 안고 / 김사인 선거철이라고 온갖 장밋빛 공약이 넘쳐난다. 국회의원 후보는 그렇다치고 대통령이라는 작자가 전국을 돌아다니며 개발 약속을 하면서 돈을 퍼주겠다고 난..

시읽는기쁨 2024.0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