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아흔 즈음에

샌. 2014. 5. 21. 08:11

백 세 시대라고 한다. 그래서 아흔 살, 백 살을 사는 기분은 어떨까? 이 책은 인문학자인 김열규 선생이 아흔 가까이 된 인생의 끝자락에서 쓰신 귀한 글 모음이다. 나이 든다는 것과 죽음에 대하여, 옛 시절의 회상, 이웃과 자연에 대한 단상이 담백하게 그려져 있다.

 

노년에 찾아오는 지루한 시간과 외로움을 선생은 솔직하게 고백한다. 하루 스물네 시간이 이백사십 시간 같다고, 아예 가지고 오지고 않는 것 같다는 것이다. 한결같은 시간, 옴짝달싹 않는 시간의 웅덩이에 빠져들고 만 것 같다고 한다. 외로움도 마찬가지다. 늙을수록 자주자주 외로움에 젖는다. 마음이 풀기 가신 갈잎 꼴로 버석대는 걸 바라본다. 나이가 드는 것과 고독을 타는 것은 정비례한다.

 

늙을수록 도시에서 친구들이 많은 데서 살아야 한다고 사람들은 말한다. 외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서일 것이다. 선생은 고향 시골 마을에 내려가서 노년을 보내셨다. 말벗이 없는 외로움을 이겨낼 다른 방법이 있어야 했다. 그것이 산책과 글쓰기였던 것 같다. 선생은 이 둘을 통해 외로움을 정신의 풍요로 승화시킨다.

 

"아무려나 지팡이 짚듯 하고는 찬찬히 걸음을 옮기면, 그 걸음걸이의 움직임새 따라 생각이 가닥을 잡는다. 한 발자국 한 발자국 떼놓은 걸음이 머리의 기운을 돋운다. 생각이 영글어진다. 걸음걸이 자체가 생각이 되고 사색이 된다. 이렇듯 산책의 보람을 한껏 누릴 수 있는 것은 외로움 덕분이다. 외롭기 때문에 비로소 삶의 값진 한 토막을 보람되게 향유하게 되는 것이다."

 

홀로 있는 것에 곱게 길들어져 가는 것도 아름다운 일이다. 외로움과 벗하며 산책하고 글 쓰는 삶을 아흔 즈음까지 할 수 있다는 것은 큰 축복이다. 늙어서도 변함없이 산책하고, 책 읽고, 글 쓰기를 할 수 있는 삶, 그런 호젓하고 조용한 삶을 꿈꾼다.  <아흔 즈음에>에 실린 선생의 글 한 편을 다시 읽어 본다.

 

 

수없이 넘고 넘은 인생의 고개

 

만세! 만세! 만만세!

마침내 하늘을 찌르는 태산준령의 꼭대기에 올라선 기분이다. 아흔, 곧 구순을 당당하게 들먹일 수 있는 나이에 다다랐다. 으쓱대고 싶다. 어깨춤이라도 추고 싶다. 우쭐대고 싶기도 하다.

팔순, 여든 살의 고개를 넘어서다니, 팔자가 사나운 건지 좋은 건지 알쏭달쏭하다. 인생의 재를 헤아릴 수 없이 넘고 또 넘어섰다니 도무지 내 일 같지 않다. 바야흐로 구순, 아흔의 나이를 지척에 두고 보니, 인생의 막바지 태산준령 앞에 서 있다는 실감이 든다. 아니, 태산준령의 정상에 서 있다는 게 더 적절할 지도 모른다.

젊음이 한창이던 시절, 꼬박 이틀 밤 사흘 낮을 걷고 걸은 저 지리산 산등성이의 해발 1,500미터와 1,900미터 사이를 오르락내리락하는 봉우리 길에 견주어도 좋은 인생의 정상을 나는 지금 가고 있는 셈이다. 으쓱대도 좋을 것 같다. 뻐기고 또 뻐겨도 괜찮을 것 같다.

멀쩡히 자기 일인데도 차마 믿기지 않는 것이 더러 있는 법. 요즘 나는 그걸 새삼 실감하고 있다. 내가 여든을 넘기고 아흔을 모레, 그 모레쯤으로 바라보는 나이를 누리게 되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못했다. 젊은 시절 병골이던 나로서는 차마 꿈도 꾸지 못했다.

"네 신랑 마흔은 넘기게 해다오."

갓 시집온 며느리에게 어머니가 그렇게 당부할 정도로 나는 약골이었다. 그런 내가 어언 아흔을 내다보다니 기적만 같다. 지금 당장 마른기침 한번 내뱉지도 않은 채 아흔을 들먹이다니, 나 스스로도 긴가민가하게 된다.

어릴 적 한참을 따라가다가 놓치고 만 그 무지개를 이제야 잡은 것 같다. 초등학교 시절 보물찾기 놀이를 하던 것이 생각난다. 흙바닥을 이리저리 뒤적거리다가 마침내 찾아낸 보물을 높이 치켜들고는 "와, 캐냈다!" 하고 소리 질렀던 그 순간이 떠오른다.

그러자니 일상에서 무슨 일에나 힘을 쓰게 된다. 더러는 안간힘을 쓴다고 해도 좋을 만큼 스스로 기를 돋우고 또 돋운다. 거의 매일, 바람 거친 바닷가를 삼십 분이 넘도록 걷다보면 종아리에 힘이 오른다. 솔바람 설레는 숲 속을 삼십 분도 더 지나게 헤치다보면 내딛는 발길이 여간 다부진 게 아니다. 팔순을 넘기고 머지않아 구순을 내다보고 있다는 생각이 들수록 산책하는 발걸음이 박자를 맞추어서 리듬을 탄다.

무엇보다 둥지를 튼 바탕이며 터전이 너무나 소슬하다. 삽상하고도 상쾌하다. 집이 뒤편으로는 산이 둘러서 있다. 우리 집 뜰을 안아 들이듯이 감싸고 있다. 집 앞은 바다를 향해서 시원하게 틔어 있다. 크고 작은 섬들이 듬성듬성 떠 있는 바다, 동편과 서편으로는 야트막한 곶이 길게 뻗어 있어 커다란 호수처럼 보이기도 하는 그 바다는 사시사철 안식으로 고여 있다.

그런 아름다운 환경에 어우러지게 팔순을 훌쩍 넘긴 나이가 매양 싱그럽다. 맥박은 산바람의 장단에 맞추어서 설레도, 가슴속은 바닷바람 쐬고는 푸르고도 또 푸르다. 나이 여든이 절로 팔팔해진다.

하지만 나이가 여든을 넘긴지라 어쩌다 기력이 빠지기도 한다. 2층을 오르내리다보면 무릎 뼈가 아릴 때도 있다. 컴퓨터 앞에서 한 시간 가까이 작업을 하다보면 허리가 뻐근해오기도 한다. 뒤질세라 머리가 짙은 연기를 쐰 듯 저려온다.

하지만 올 것이 온 바에야 눈치하고 미워하면서 야박하게 굴지는 말자고 스스로를 타이른다. 그런 것은 순리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고 고개를 숙인다.

아니, 그렇게만 그치고 말지는 않는다. 어쩌다 기력이 빠진다는 생각이 들면 내 마음에 호된 매질을 한다. 못된 아이 다루듯이 다그치고 몰아붙이기도 한다. 그러면서 피치 못해 나이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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