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고본느낌

어제를 향해 걷다

샌. 2014. 6. 2. 09:30

가고 싶은 해외여행지 일순위가 일본 가고시마 남쪽에 있는 야쿠시마[屋久島]라는 섬이다. 수천 년 된 나무들이 자라는 미야노우라 산에는 수령이 7,200년이나 되는 조몬 삼나무가 있다. 이 나무를 찾아뵙고 경배하는 것이 나의 소원이다. 조몬 삼나무를 찾아가는 다큐영화 '시간의 숲'이 2년 전에 개봉되기도 했다.

 

그리고 야쿠시마는 야마오 산세이[山尾三省, 1938~2002] 선생이 살았던 곳이다. 마침 선생이 쓴 산문집 <어제를 향해 걷다>를 읽었다. 표지에는 선생에 대한 소개가 이렇게 적혀 있다.

 

"시인이자 농부였고 철학자이기도 했던 야마오 산세이는 졸업장을 갖고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비겁한 사람이나 하는 일이라며 와세다 대학 3학년 때 학업을 접고, 1960대 후반부터 '부족'이란 이름으로 대안 문화 공동체 운동을 시작했다. 통치하는 또는 통치받는 그 어떤 개인이나 기관도 없는, 아니 통치라는 말조차 아무런 쓸모가 없는 사회, 땅에서 태어나고 땅 위에 아무것도 세우지 않고, 다만 땅과 함께 살고, 땅으로 돌아가는 세상이 그의 목표였다. 오전은 기도와 명상으로 오후에는 산책이나 책읽기 등으로 보내며 그는 일 년간 온 가족과 함께 인도 순례 여행을 하기도 했다. 1975년부터는 도쿄 한복판에 3층짜리 건물을 임대하여 1층에는 유기농산물 가게, 2층에는 유기농 식당, 3층에는 책방과 모임터를 열어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살기 좋은 마을'을 만드는 일을 했다. 1977년, 서른아홉의 나이에 중앙이 아니라 지역에서 세상을 바꿔 가는 길을 걷고자, 도쿄에서 아주 먼 남쪽의 작은 섬인 야쿠시마의 한 폐촌으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애니미즘(자연 신앙)을 이 세상을 건강하게 만들어 갈 수 있는 작지만 중요한 방법론의 하나로, 희망의 하나로 이야기하며 살았다. 그는 '손수 농사지어 먹는다' '되도록 기계에 의존하지 않는다' '기도와 명상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서두르지 않는다' '집중한다' 등 스스로 세운 삶의 원칙 아래 살다가 2002년에 자신이 사랑했던 섬에서 이 세상을 떠났다."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삶을 사신 분 중의 하나가 야마오 산세이 선생이다. <어제를 향해 걷다>를 읽으며 선생의 사상과 삶에 더욱 감동 받았다. 선생은 이를 자연생활이란 말로 표현하는데, 자연생활이란 자연을 주인으로 하고 인간을 종으로 하는 생활을 말한다. 서구식 사고방식을 완전히 뒤집은 것이다. 자연생활을 하는 인간을 선생은 옛날인간이라고 부른다. 옛날인간이란 자연, 지구, 우주의 자애로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진화가 아니라 단지 변화만을 즐기는 가운데 거기서 영원한 진리를 발견해 내는 인간이다. 자연생활과 옛날인간이야말로 다가올 문명, 앞으로 추구해야 할 문명의 형태로서 유일무이한 것이라고 선생은 말한다.

 

선생 주장의 한 토막이다.

 

"우리들의 새로운 지침은 수소 폭탄을 만들기보다 돼지를 기르자는 것이다. 중화학 공업에 종사하기보다 차나무를 심자는 것이다. 도시 문명의 주인이 되기보다는 시골 문화의 주인이 되자는 것이다. 정보가 존재인 세계가 아니라 존재가 정보인 세계에 살자는 것이다. 자신의 진실한 노래를 부르자는 것이다. 조용히 소박하게 살자는 것이다. 자기 자신에게 귀를 기울이자는 것이다. 생활이 그대로 실재이고, 실재가 그대로 생활인 삶을 살자는 것이다. 우리 안의 지극히 높은 자, 곧 신에게 기도하며 살자는 것이다."

 

이 책을 읽으며 '독일(獨一)'이라는 새로운 말을 알게 되었다. 독일은 잇벤 큰스님이 만든 선어(禪語)라고 한다. 독일이란 홀로 있되 외롭지 않고, 편안하고, 바깥 세계와 단절돼 있지도 않은 상태다. 모든 것과 조화롭게 관계를 맺고 살면서도 홀로 넉넉하다. 고독이되 자기 성장의 한 형태로 꽃을 피우는 고독,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태에 이른 자만이 내보일 수 있는 깊은 고요의 모습이 독일이다.

 

선생은 끊임없이 삶의 근원, 삶의 본질에 대해서 묻는다. 질주하는 현대 문명에 브레이크를 걸지 않고는 인류의 미래는 없다. '어제를 향해 걷다'라는 책 제목이 이를 잘 말해 준다. '오래된 미래'와 같은 의미다. 선생의 삶을 누구나 따라 할 수는 없다. 같은 발자국을 밟고 간다고 모두 좋은 삶이라는 것도 아니다.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살아가면서 방향만 같으면 된다. 선생의 방향이 옳다고 나는 믿는다. 조몬 삼나무와 야마오 산세이, 일본의 남쪽 섬 야쿠시마에 가보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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