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여행이 좋은 것은

샌. 2014. 12. 1. 12:58

관광과 여행은 다르다. 관광은 'sight-seeing'이다. 새로운 풍경과 구경거리를 찾아다닌다. 대부분의 패키지여행은 관광이다. 떼로 몰려다니며 아름다운 경치나 유적물에 감탄하고 바삐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반면에 여행은 교감이다. 낯선 장소, 사람들과 정서적 유대감을 발견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여행은 떠남을 통해 자신과 만난다. 여행에는 영혼의 울림이 있다. 여행은 쫓기지 않는다. 한 장소에 오래 머문다. 그리고 혼자여야 한다.

 

나는 제대로 된 여행을 한 적이 있었던가? 값싸고 편하다는 이유로 상품화된 프로그램에, 무리에, 몸을 맡기지는 않았던가? 이젠 혼자 떠나는 여행이 두렵다. 훌쩍 나서면 그만인데 그 한 걸음이 어렵다.

 

최현주 씨의 글을 읽다가 여행에 대한 대목을 보았다. 포카라에 가서 한 달쯤 빈둥거리다 오고 싶다. 지갑에는 네팔 루피가 아직 넉넉히 남아 있는데....

 

 

"여행이 좋은 것은 세상 구석구석에 존재하는 것들이 나직이 말을 건네오는 소리에 귀를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지. 나무의 머리 꼭대기에 앉았다 가는 바람이, 토닥토닥 마른 흙을 위로하려 오는 빗방울이, 허공중에 멈춰서서 깊은 생각에 잠겨 있는 안개가, 먼지 낀 길을 바삐 가다가 잠시 고개를 돌려 눈을 마주쳐주는 친절한 시골 강아지가, 절집 뒷마당에서 햇살놀이를 하는 그림자가, 다람쥐처럼 부지런한 숲 속 붉은 열매가, 수 천 년 흐르던 눈물로 마침내 바다로 가는 길을 찾아낸 장한 강물이,

 

이 모든 것들이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찬찬히 세상을 도는 사람들만 들을 수 있는 소리, 아주 먼 곳에서 들려오는 듯 아주 가까운 곳에서 울리는 듯 나그네를 불러 세우는 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당신도 알게 되지. 이 땅에 태어난 모든 것들이 하늘을 동경해서 끝없이 오르려 오르려고만 한다 해도 저 홀로 마지막까지 지상의 가장 낮은 곳을 떠나지 않을 땅의 수호신, 바위틈에서 미끄러져 나온 저 뱀이 지난봄 내게 해준 말을. 이 세상에 자라는 모든 것들이 제 힘 닿은 만큼 활짝 두 발 두 날개를 벌려 간난의 시간을 단번에 건너뛰려고 애쓸 때도 물처럼 쉬 흐르지 않고 한 발 한 발 꼭꼭 밟아가며 제 몫의 삶을 살아내는 저 여리고 강한 넝쿨손이 내게 속삭여준 말을.

 

당신도 알게 되지. 여행이 좋은 것은 지구 반대편에서 온 당신과 또 다른 반대편에서 온 내가 그들의 말에 똑같이 귀를 기울일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그 순간 당신과 나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이 같은 언어로 소통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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