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위의단상

2016. 12. 9.

샌. 2016. 12. 12. 16:42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서 탄핵당했다. 여섯 차례에 걸쳐 주말마다 광화문 광장을 매운 시민의 외침이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아직 헌법재판소의 심판이 남아있지만, 대통령 퇴진이라는 시민의 요구를 결코 무시할 수 없으리라고 본다.

 

2016년 12월 9일, 이날은 역사에 시민 혁명으로 기록될 것이다. 최순실에 의한 국정 농단에 분개했지만, 촛불을 통해 시민의 힘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민주주의가 살아있음을 만천하에 보여주었다.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헌법 1조의 생생한 교육장이었다. 어떤 어둠의 세력도 빛을 이길 수는 없다.

 

수백만 명이 모였지만 집회가 평화롭게 진행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일부 정치권에서는 폭력 사태와 계엄령 선포라는 대혼란을 걱정했지만 기우였다. 자발적으로 참여한 시민들은 분노를 표현하되 마치 축제를 즐기는 것 같았다. 시대는 변했다. 이젠 혁명도 웃으면서 하는 것이다.

 

"이게 나라냐"며 분개했지만 지금은 대한민국이 자랑스럽다. 젊은이에게서 미래의 희망을 본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대한민국은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 단계 성숙할 것이라고 믿는다. 박근혜가 물러난다고 목표가 이루어진 게 아니다. 지금부터 시작이다. 구시대의 적폐를 청산하는 데 다시 시민의 역량을 모아야 할 것이다.

 

최순실이라는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리기 시작하고 두 달 가까이 내 일상은 헝클어졌다. 마음을 잡을 수 없었다. 이런 나라에 산다는 자괴감으로 우울증에 빠졌다. 매사에 의욕을 잃었다. 십 년 넘게 매일 글을 올리던 블로그에도 들어올 수 없었다. 그러나 촛불의 에너지로 다시 힘을 얻으려 한다. 탄핵을 통해 일차 관문은 통과했다. 12월 9일이 새 시대로 향하는 분기점이 되었으면 한다.

 

시민들은 이날 축포를 쏘아 올렸다. 그러나 이날은 가슴에 묵직한 돌 하나 달고 있는 듯한 착잡한 날이기도 했다. 나라를 이 지경으로 만든 박근혜와 최순실 일당의 죄는 용서할 수 없지만, 한편 인간에 대한 연민으로 마음이 아프다. 인간은 얼마나 무지하고 탐욕스럽고 비굴해질 수 있는가. 박근혜는 아직 자신의 행위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권력의 그늘에서 기생하며 나라를 어지럽힌 이들은 거짓말로 변명하며 제 살길 찾기에만 바쁘다.

 

당분간 정국이 혼란스럽겠지만 새 시대로 나아가는 진통으로 생각한다면 충분히 감내할 수 있다. 기득권을 가진 자들을 위한 나라가 아니라 대다수 보통 사람들이 행복할 수 있는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다. <백범일지>을 꺼내 김구 선생이 원하던 우리나라의 모습을 다시 읽어본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富力)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强力)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문화의 힘은 우리 자신을 행복되게 하고, 나아가서 남에게 행복을 주겠기 때문이다. 지금 인류에게 부족한 것은 무력도 아니요, 경제력도 아니다. 자연과학의 힘은 아무리 많아도 좋으나, 인류 전체로 보면 현재의 자연과학만 가지고도 편안히 살아가기에 넉넉하다. 인류가 현재에 불행한 근본 이유는 인의(仁義)가 부족하고, 자비가 부족하고, 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이 마음만 발달이 되면 현재의 물질력으로 20억이 다 편안히 살아갈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우리나라가 남의 것을 모방하는 나라가 되지 말고, 이러한 높고 새로운 문화의 근원이 되고, 목표가 되고, 모범이 되기를 원한다. 그래서 진정한 세계의 평화가 우리나라에서, 우리나라로 말미암아 세계에 실현되기를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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