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여름밤 / 김용화

샌. 2022. 7. 3. 10:46

견우직녀 만난다는 칠석날 밤

감나무 아래

모깃불 올리고

떠꺼머리 총각들 모여 앉아

말미 받아 돌아온

머슴살이 성배 형 연애담을 듣노라면

별자리 돌아 밤은 깊어

산골짝 옹달샘

마을 처녀들 목욕하며 쫑알대는 소리

꺼벙이 노총각을 앞세워

조심조심

오리걸음으로 다가갈 때

자발없는 어느 놈, 킬킬대

판을 깨면

앙칼진 처녀들 목청은

밤하늘로 날아가 별이 되어 반짝이고

 

- 여름밤 / 김용화

 

 

마당에 멍석을 펴고 온 식구가 저녁 밥상을 마주한다. 매캐하면서 구수하기도 한 모깃불 연기가 바람 따라 식구들을 순서대로 만나고 지나간다. 엄마는 큰 양푼이에 보리밥과 푸성귀를 섞은 비빔밥을 만든다. 상 가운데는 된장찌개가 뽀글뽀글 끓고 있다. 풀벌레들은 하루를 마감하는 노랫소리로 요란하다. 저녁을 먹고 나면 남자들은 어디론가 흩어지고 훤한 멍석에는 여자들만 남는다. 이웃집 할머니도 자리를 함께 한다. 손에는 모두 부채를 들고 있다. 할머니 부채는 손주에게 달라붙는 모기를 쫓아내기 위해 바쁘다. 나는 할머니 옆에 누워 어른들이 나누는 이야기를 들으며 잠에 빠져 든다. 낮 동안 내내 앞 '거랑'에서 물놀이하며 노느라 기진맥진해 있는 상태다. 감나무 우듬지에 걸린 북두칠성을 보며 스르르 눈이 감기는 여름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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