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읽는기쁨

길 / 김시천

샌. 2022. 7. 19. 10:45

길을 가다가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평생을 동무하여

함께 걸어갈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다면

그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제 마음 다 퍼내어

서로의 먼지 낀 자리

병든 상처 씻어주고

마른 목 적셔주며

그렇게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오늘 비로소 그런 사람을 만난다는 것은

먼길 앞에 두고

비록, 지금 가난하다 하여도

그러나 그것 또한 얼마나 좋은 일인가

오히려 정직하고 선량한 마음만으로

그렇게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그렇게 지금 시작한다는 것은

 

- 길 / 김시천

 

 

오솔길, 언덕길, 숲길, 고갯길, 논두렁길, 밭두렁길, 꼬부랑길, 비탈길, 가시밭길, 벼룻길, 외퉁길, 후밋길, 한길, 지름길, 에움길, 거님길, 두멧길, 뒤안길, 발구길, 푸서릿길, 눈석잇길, 돌서덜길, 자드락길, 고샅길, 진창길, 갈림길, 흙탕길, 벼랑길, 돌림길, 황톳길, 후미길, 너덜길. 꽃길.... 길을 나타내는 고운 우리말들이다. 지구별에서 태어난 우리는 각자의 인생길을 걸어간다. 지름길을 내달리느라 바쁜 사람이 있고, 에움길을 여유있게 돌아가는 사람도 있다. 꽃길을 바라지만 예상치 못한 가시밭길에 피가 흐르고, 아무도 봐주지 않는 뒤안길에서 눈물짓는 사람도 있다.

 

인생이라는 나그넷길에서 마음을 나누며 함께 걸어갈 길동무가 있다면 시인의 말처럼 얼마나 좋은 일이겠는가. 그러나 실망할 필요는 없다. 마음만 열면 바람과 구름과 나무와 꽃, 별이 동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이들은 사람처럼 변덕스럽지 않고 서운하게 하는 일도 없다. 오히려 소중한 것은 '정직하고 선량한 마음으로' 길을 가는 일이 아닐까. 비록 지금 가난하다 하여도 그렇게 길을 갈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복된 일인가. 긴 여정을 끝낸 나그네는 흐뭇하게 석양을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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