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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엔 편지를 띄우세요

가을비가 내린다. 도시의 아스팔트 길도, 노랗게 물들어가는은행나무 가로수도 비에젖고 있다. 내 마음도 비에 젖는다. 아침부터 분주하던 마음이 가을비에 젖어 차분해진다. 이러다가는 너무 가라앉을까 봐서 걱정이다. 또 우울증이 찾아 오면 어떡하나..... 그러나 적당한 우울과 쓸쓸함은 정신의 보약이 될 수도 있다. 자연과 차단된 여기 사무실 가운데서도 빗소리는 나를 가을의 스산한 늪 속으로 빠지게 한다. [반가운 분이 보내준 갈대 사진 중 하나] 한참동안 소식이 끊어졌던 분에게서 메일이 왔다. `이 아름다운 가을에... 행복하세요.....` 짧은 내용이었으나 따스했다. 그리고 서정 가득한 가을 풍경 사진 여러 장을 같이 보내 주었다. 나도 오늘은 뜸했던 친구들에게 편지를 띄어야겠다. 오해로 소원해진 여러 사..

사진속일상 2003.10.21

하느님은 유죄인가?

어제 저녁 미사는 특별했다. 강론 시간에 바오로딸 수녀님들이 연극을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그 제목이 `하느님은 유죄인가`였다. 마침 어제가 전교 주일이었다. 바오로딸은 출판이나 미디어를 통해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을 소명으로 하는 수녀원이다. 가톨릭 신자가 된지 오래 되지는 않았지만 강론이 연극으로 대신된 것은 처음이었다. 그런 형식의 파격이 더욱 좋았다. 그런 파격이 주는 긍정적인 인상과 내용은 백 마디 말보다 훨씬 더 직접적인 감동을 주었다. 연극 내용은 다음과 같다. 神이 법정에 기소되었다. 검사와 검사 쪽 증인 두 명이 神을 고발한 것이다. 검사의 기소 이유는 세 가지이다. 첫째,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걱정하지 말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현혹시킨 죄. 열심히 일해도 먹고 살까 말까 한 ..

길위의단상 2003.10.20

우리 배추

9월 초에 읍내에 나가 배추 모종을 샀다. 거름 한 포와 섞어서 뜰에다 심어 놓았다. 비가 내리던 그 날, 대충 대충 엉성하게 옮겨 놓기만 했다. 그 뒤 일이 생겨서 내려가 보지도 못한 채 한 달여가 지났다. 물을 주지도 김을 매주지도 못했다. 그런데 산흙을 퍼다 만든 마당의 척박한 땅에서 저 혼자 이만큼 자라 주었다. 농민들이 키운 배추와는 비교도 되지 않게 초라하지만 그래도 이만큼 자라준 배추가 고맙기만 하다. 사이 사이 솎아와서 이웃에도 나누어 주다. 그런데 잎이 억세서 냄비에 푹 끓여 먹어야 겠다.

참살이의꿈 2003.10.19

자작나무

산골집은 대들보도 기둥도 문살도 자작나무다 밤이면 캥캥 여우가 우는 山도 자작나무다 그 맛있는 모밀국수를 삶는 장작도 자작나무다 그리고 감로같이 단샘이 솟는 박우물도 자작나무다 산너머는 평안도땅도 뵈인다는 이 山골은 온통 자작나무다 白石의 이 시 한 구절 때문에 나는 어느 날 자작나무를 좋아하게 되었다. 그 때까지 자작나무를 본 적도 없었지만 왠지 자작나무가 다정하게 다가온 것이다. 사진으로 본 새하얀 수피와 가을이면 노랗게 물드는 나뭇잎은 이름 그대로 그렇게 품위있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자작나무의 남방 한계선 아래에 있는 우리나라에서는 이 나무가 무척 귀한데 북쪽 지방에서는 땔감으로 사용한다니..... 불에 탈 때는 자작 자작하고 소리가 날 것만 같았다. 그리고 자작나무 숲이 망망대해로 펼쳐져 있다..

꽃들의향기 2003.10.18

행복의 조건

나는 지금 행복한가? 글쎄다. 행복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가 없다. 그렇다고 불행하다고 여기는 것도 아니다. 약간은 어정쩡한 상태이지만 행복한 상태는 아니다. 때에 따라 강도가 다르기는 하지만 대체로 지금의 나는 불안하고 욕구 불만에 차 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고 세상 일이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불평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도크게 행복할 것 같지도 않다. 나의 바램대로 모든 일이 이루어지더라도 그것은 나의 개인적 성취일 뿐, 가난한 이웃을 외면하고 살 수는 없을 것 같아서이다. 한 끼 끼니를 걱정하는 이웃이 있는데 혼자서호의호식하는 것이 참된 기쁨이고 행복일 수는 없겠기 때문이다. 또어려운 형제를 못 본 척해 놓고 내가 어찌 편안히 잠들 수 있을까? 세상 사람들 살아가는게 다 그렇겠지 뭐 하는 소..

길위의단상 2003.10.18

코스모스 씨를 받다

잠실 쪽 한강 둔치에는 긴 코스모스 길이 있다. 두 달 가까이 아름다운 꽃을 피어 주어서 산책을 하거나 운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해 주었다. 그러나 지금은 잎도 시들고, 꽃들도 대부분 지고 그 자리에는 까만 씨가 맺혔다. 퇴근하면서 며칠동안 이 씨를 받았다. 날카로운 끝 부분에 찔리기도 하고, 손가락에서는 코스모스 냄새가 배어 버렸다. 내년 봄에는 내 시골 터에다 코스모스 씨를 뿌릴 계획이다. 집과 마당이 코스모스로 둘러싸여 있는 모양을 그려보면 즐겁다. 욕심이라면 동네 길도 코스모스 길을 만들고 싶다. 온 동네가 코스모스 꽃밭인 시골 마을, 이것 역시 생각만으로도 기분이 좋아진다. 친구들은 씨를 맺고 벌써 땅에 떨어져 내년을 약속하고 있는데, 어떤 친구는 이제야 꽃잎을 활짝 피우고 ..

사진속일상 2003.10.17

그만큼 행복한 날이 / 심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심 호택 그만큼 행복한 날이 다시는 없으리. 싸리빗자루 둘러 메고 살금 살금 잠자리 쫒다가 얼굴이 발갛게 익어 들어오던 날. 여기저기 찾아 보아도 먹을 것 없던 날. 아무 것도 먹을 것 없던 그 때가 어떻게 행복했을까? 지나간 것은 다 그리워지기 때문일까? 그 때는 모두들 가난했지만 가난했다는 생각은 거의 없었다. 마음의 배고픔은 아니었다. 그러나 어른이 된 지금, 잘 먹고 잘 살게 되었지만 사람들은 허기에 져 있다. 조사에 따르면 세계의 빈국들에서 행복지수가 높게 나오고 있다. 물질적 풍요와 정신의 행복은 비례하는 것이 아닌가 보다. 도가 지나친 풍족과 욕심은 공허와 권태라는 또 다른 선물을 가져다 준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 또 문명의 발전이라는 것은 뭔가 소중한 것을 잃어가는 과..

시읽는기쁨 2003.10.16

닭의장풀

[닭의장풀, 영주] 닭장 주위에서 잘 자란다고 해서 닭의장풀이란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그만큼 장소 불문하고 잘 자라는 우리 주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꽃이다. 그래서 소홀히 하기 쉬운 꽃이기도 하다. 그냥 보면 별 특징없어 지나치기 쉬우나 코를 꽃에 까지 갖다대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무척이나 귀여운 꽃이다. 특히 카메라 파인더로 들여다보면그 색깔이나 모양이 무지 이쁘다. 그런데 사진은 보는 만큼 나오지 않는다. 이건 순전히 내 실력 탓이니 어찌 하랴.

꽃들의향기 2003.10.14